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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보물 아닌 소장품 144점 이야기 풀어…"자세히, 처음처럼, 다르게"
덩그러니 남은 오른손은 금동으로 만든 부처의 손이란 뜻에서 '금동불수'(金銅佛手)라고 불렸다. 과거 안압지로 불린 신라의 인공 연못, 월지(月池)에서 나온 유물이다.
몸체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전시됐던 이 손의 크기는 불과 4.8㎝.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에서 소개하기도 했으나, 크기가 워낙 작은 데다 온전하지 않은 모습인 탓에 오랜 세월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누군가는 스쳐 지나갔을 금빛 손이 처음으로 '주인공'이 됐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근무하는 12명의 큐레이터(유물을 수집·관리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가 꾸민 '소소하고 소중한' 특별전을 통해서다.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은 9일 열린 간담회에서 "기존의 박물관 전시가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했다면, 이번에는 전시를 준비하는 사람의 선택에 초점을 맞춰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오는 10일 개막하는 특별전에는 국보나 보물은 단 한 점도 없다.
작아서, 깨져서, 혹은 가치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한 채 수장고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던 문화유산 44건 144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제현 학예연구사는 "수장고에 있는 유물 30만 점 가운데 전시로 소개하는 유물은 1만점 정도"라며 "수장고에서 찾아낸 문화유산을 각자 이야기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박물관 경력 34년 차인 함순섭 관장의 추천 유물로 시작된다.
금빛의 작은 유리구슬은 1921년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투명한 유리 사이에 금박을 넣어 마치 금 구슬로 보이는데 크기가 손톱만 해서 자세히 봐야 한다.
함 관장은 "2005년 경주박물관에 발령받아서 온 뒤 수장고에서 가장 먼저 찾았던 유물"이라며 "초원의 길을 따라온 국제교류의 산물"이라고 소개했다.
관람객에게 처음 공개되는 유물도 눈길을 끈다.
경주 도심 동쪽에 있는 황용동의 한 절터에서 찾은 사자상과 짐승 얼굴 무늬 꾸미개는 최근 발굴 조사에서 찾은 통일신라시대 불교 미술품이다.
머리를 왼쪽으로 돌려 옆을 바라보면서 다리를 쭉 뻗은 사자상은 익살스러운 모습이다.
수장고에서 '보물'을 찾은 큐레이터의 감동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김대환 학예연구사가 선택한 바둑돌은 경주 황오동의 신라시대 건물터에서 나온 것이다. 지름이 1.3∼1.6㎝ 크기로 백돌 43개와 흑돌 55개로 구성돼 있다.
왕릉급 무덤에서 바둑돌이 나온 적은 있으나 건물터에서 찾은 사례는 드물다. 약 1천500년 전 신라 사람들의 놀이 문화를 유추할 수 있는 증거로도 가치가 크다.
"기록으로 전하는 신라 바둑의 실체를 박물관 수장고에서 만난 그날의 흥분은 잊을 수 없습니다. 박물관 큐레이터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전시 설명 중)
이 밖에도 실물로는 접하기 어려운 금관총·천마총의 직물, 경주 지역에서 출토된 각종 나무 빗, 청동기 시대에 돌을 갈고 자르고 만들던 흔적 등도 볼 수 있다.
특정 주제나 시대로 묶는 기존 전시와 다르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전시품 옆에는 큐레이터들이 이 작품을 왜 선택했는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관람할 때 어떤 부분을 봐야 하는지 조언한 내용이 적혀 있어 이해를 돕는다.
상설전시관에서 금관, 금 허리띠 등 신라 천 년의 역사와 황금 문화를 보여주는 국보·보물급 문화유산을 둘러본 뒤 특별전을 보면 색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박물관은 "전시뿐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도 자세히, 처음처럼, 다르게 볼 때 특별함과 소중함을 알아갈 수 있다는 점을 느끼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내년 3월 9일까지.
yes@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