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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때로는 편견이 눈을 가릴 때가 있다. 아동학대 같은 문제에 직면할 때 특히 그렇다. 아동학대는 흔히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꾸리는 가정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편견이다.
서현이는 계모인 엄마에게 5년 동안 고문보다 더한 학대를 받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몸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허벅지 뼈가 두 동강이 났고, 같은 해 10월에는 양손과 발등, 정강이에 피부 이식 수술을 해야 하는 2도 화상을 입었다. 모두 계모 박씨의 짓이었다.
주변인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공부 잘하고 모범생인 서현이가 그맘때 아이들이 그러하듯, 부주의하다고 여겼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던 과외 교사도, 서현이를 치료했던 의사도, 아파트 이웃들도, 자주 멍이 드는 서현이의 상태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주변의 무심과 애정결핍 속에서 아이는 점차 학대에 익숙해졌다. 아빠까지 계모 편을 들었기에, 아이는 그 흔한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서현이는 계모의 허락이 없으면 냉장고 문도 열 수 없었고, 정수기 물도 마시지 못했다. 그렇게 통제받던 아이는 가정환경 조사서에 '부모님과 친하다', '행복하다'고 적었다. 담임교사와 상담을 한 계모 박씨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야시(여우) 같은 게 거짓말도 잘하네. 안 행복할 텐데…."
애정도 받지 못한 채 눈치만 보며 폭력에 노출돼 무방비로 살아가던 서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인천으로의 전학이 예정된 서현이를 평소 예뻐하던 미용실 원장이 2만원을 줬는데, 그중 2천300원을 헐어 젤리 과자를 사 먹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계모는 "너 같은 X은 소풍 갈 자격이 없다"며 닥치는 대로 서현이를 때렸다. 그 과정에서 갈비뼈 16개가 부러졌고, 부러진 뼈가 폐를 찔렀다. 서현이를 죽음으로 내몬 직접적 사인이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가 쓴 '잊혀지지 않을 권리'(느린서재)에 나오는 '서현이 사건' 이야기다. 그는 이 사건을 알게 된 후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시민단체 활동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공 대표는 아동학대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사건의 재판을 찾아가 방청 기록을 하며,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탄원서를 제출하는 일을 한다. 책은 지난 12년간 아동학대 사건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저자가 재판정에서 보고 듣고 정리한 자료들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종교에 빠진 엄마 탓에 사이비 종교인에게 매를 맞아 죽은 수인이, 굶어 죽은 지 6개월 만에 미라 상태로 발견된 보름이, 21일간 방치돼 굶어 죽은 주현이, 개 사료를 훔쳐 먹다 죽은 예린이, 태어날 때보다 몸무게가 덜 나갈 정도로 굶어 죽은 별리 등의 사연이 수록돼 있다.
읽어 내려갈수록 답답해지고 마음이 무거워져 완독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책이다. 읽은 기억을 재빨리 지우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의 사연에는 '잊히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 글은 잊혀져서는 안 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잊는 순간 아이들의 존재와 함께 미안하다는 반성과 다른 아이들은 지켜주겠다는 다짐마저 사라져버리고 만다. 아이들의 죽음이 법과 시스템을 개선하는 슬픈 계기가 되었기에 이 아이들은 '잊혀지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지켜주어야 한다."
376쪽.
buff27@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