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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재난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 타인을 위해 희생을 마다치 않는 숭고한 정신을 가진 인간. 배우 이병헌(52)이 '비상선언'을 통해 꺼내고자 한 메시지다.
특히 '비상선언'은 장르 불문, 캐릭터 불문 매 작품 명품 열연을 펼친 이병헌이 '백두산'(19, 이해준·김병서 감독) 이후 다시 한번 재난물에 도전해 눈길을 끈다. 조금은 평범한 아빠로 변신한 이병헌은 딸의 치료를 위해 비행 공포증을 딛고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탑승객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탑승 전부터 자신의 주변을 꺼림칙하게 맴돌던 의문의 승객 진석(임시완)이 같은 비행기에 탄 사실을 알고 의심과 불안에 빠지는 인물을 연기한 그는 이후 재난 상황에 닥친 혼란의 비행기 안에서 밀려오는 공포감과 공황, 그리고 승객을 구출해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번민하는 캐릭터로 다시 한번 정점의 연기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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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다 완성된 영화지만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의도적이지 않지만 팬데믹 상황을 지나면서 이 영화의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영화를 본 사람들 반응도 더 좋았던 것 같다"며 "사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비상선언' 팀 모두 너무 당황했다. 팬데믹 자체가 불안과 걱정이지 않나? 현실이 영화를 앞서가는 힘든 상황도 생겼다"고 고백했다.
이어 "걱정 속 촬영을 이어갔고 나중에 완성본을 봤을 때 감정 이입이 심하게 됐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느끼는 바도 있지만 여러 인간 군상이 나온다. '나라면 과연 어떻게 판단할까?'라는 스스로의 질문이 생기는 영화다. 다른 때보다 팬데믹 이후의 영화를 보니 더 생각이 깊어지더라. 팬데믹은 전 세계가 겪은 힘든 시간이지 않나? '비상선언'이 전 세계 모두 공감대가 깊게 형성되지 않을까 싶고 그런 부분에서 기대도 있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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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영화 속 백미로 꼽히는 비행 액션 장면에 대해서도 뜨거운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영화가 시작하면 긴장감이 유발되고 이후에도 긴장감에 긴장감을 더하며 영화가 질주한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긴장감과 당혹스러움이 계속됐다. 마치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으로 단번에 재미있게 읽었고 그런 부분이 영화에도 잘 담긴 것 같다"며 "원래 '비상선언'은 미국의 짐벌 전문 팀을 불러 만들려고 했다. 거대한 장비도 한국으로 가져와야 했고 시간이 걸렸다. 결국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모든 게 다 늦어지게 됐고 장비를 조정하는 스태프도 못 온다는 이야기를 받았다. 그래서 우리 팀이 직접 이 짐벌을 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도 이렇게 큰 사이즈의 짐벌을 만들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세트 안에서 촬영할 때 더 긴장하기도 했다. 물론 수십 번 테스트를 통과해 안정성이 검증됐다고 하지만 100여명의 인원이 탑승한 비행기 세트로 촬영을 하는 게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 공포스러움이 연기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 같다. 나중에는 익숙해져 놀이기구 타는 것처럼 여유롭게 탈 수 있게 됐다. 대단한 촬영이었다. 커다란 비행기를 돌릴 짐벌을 만들고 끝까지 해낸 것 아닌가? '비상선언'만의 시그니처가 된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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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싱글라이더'(17, 이주영 감독) '백두산'(19, 이해준·김병서 감독) 이어 아빠 연기에 도전했다. 실제로 '백두산'에 나온 딸(김시아)과 '비상선언'의 딸이 자매다. 두 딸의 아빠 연기를 하게 된 셈이다. 정말 좋은 배우들이다. 나도 아들이 있는 아빠로서 직접 경험이 주는 확신이 있다. 다만 아들을 가진 아버지와 딸을 가진 아버지의 차이를 주변 지인들을 보면서 관찰했다. 확실히 아들을 둔 아버지와 딸을 둔 아버지는 굉장히 다르더라. 아이와 노는 방법도 달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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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실제 공황장애를 겪은 경험 때문에 이 캐릭터에 공감했다기보다는 공황 부분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혁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과정에 어떤 공포를 느끼고 어떤 증상을 느끼는지, 또 호흡이 어떤지 등 이런 것에 대해 한재림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비행기만 타도 공포스럽고 신경안정제도 필요한데 비행기 안 상황이 더 극단으로 점층 되니까 반복되는 공황의 증상이 생긴다. 공황장애에 대한 표현들은 조금씩 보여지지만 그걸 아는 사람으로서 좀 더 리얼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노력을 밝혔다.
고민과 걱정을 함께 나눈 동료들에 대한 믿음도 확고했다. 이병헌은 "작품을 할 때 결과를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지 않나? 좋은 이야기에도 만드는 과정에서 잘못된 길을 따라가 영화가 사랑을 못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일단 함께 호흡하는 캐스팅들이 좋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의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영화가 사랑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훨씬 더 커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배경이 되는 것 같다. 이번 '비상선언'은 송강호, 전도연 등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고 웃었다.
또한 '비상선언' 속 파격 빌런으로 변신한 임시완을 향해 "임시완이 그 역할에 맞는 표정과 눈빛으로 연기했기 때문에 내가 연기를 하는데 더 좋은 케미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며 "실제 임시완은 영화 속 모습과 달리 정말 굉장히 귀여운 후배다. 아주 귀엽고 엉뚱하고 질문도 많다. 가끔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도 생각해야 하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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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BH엔터테인먼트, 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