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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너무 당당해서 너무 외로웠던 스타"…'韓최초의 월드스타' 故강수연, 영면에 들다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22-05-11 10:03 | 최종수정 2022-05-11 11:04


한국 영화의 큰 별 故 강수연의 빈소가 8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지난 5일 배우 강수연은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서울 강남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됐다. 고인은 1987년 영화 '씨받이'로 제4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1989년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발인은 11일이다.
사진제공=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별보다 아름다운 별, 한국 최초의 월드스타 강수연이 슬픔 속 영면에 들었다.

고(故) 강수연의 발인식은 11일 오전 10시 진행됐다. 이날 영결식의 사회는 후배 유지태가 맡았다.

가장 먼저 유지태는 "별보다 아름다운 별, 강수연 님의 영결실을 거행하겠다"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는 "아직 실감이 안난다. 그저 영화 속 장면이었으면 좋겠다. 수연 선배를 떠나보내는 자리에 가족들과 영화계 선후배들이 함께 해주셨다"고 인사를 대신했다.

이어 김동호 장례위원회 위원장이 추도사로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김 위원장은 "오늘 우리 영화인들은 믿기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 황당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을 떠나보내고자 한다"고 먹먹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수연 씨 이게 어찌된 일인가. 우리가 자주 다니던 만둣집에서 만난지 채 한달도 안됐는데, 건강하게 보였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처음 만난지 33년이 지났다. 그동안 아버지와 딸처럼, 오빠와 동생처럼 지냈는데 나보다 먼저 떠날 수 있나"라며 한탄했다.

더불어 "당신은 참으로 힘들게 살아왔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늘 명예롭게 잘 견디며 살아왔다. 당신은 억세고 지혜롭고 강한 가장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내색하지 않고 부모님과 큰오빠를 지극정성으로 모셔왔고 잘 이끌어왔다. 범접할 수 없는 미모와 위용을 가지며 남자 못지않은 강한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후배들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이끌었다"며 "오랜 침묵 끝에 새로운 영화로, 타고난 연기로, 새롭게 도약하는 강수연의 모습을 믿었다. 그 영화가 유작이 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에서 비록 인공호흡기를 장착하고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당신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강수연 씨 부디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고인과 한국 영화사를 함께 걸어간 임권택 감독은 "수연아, 친구처럼 동생처럼 네가 곁에 있어 늘 든든했는데 뭐가 그리 바빠 서둘러 떠났니. 편히 쉬어라"고 애통한 마음을 전했다.


고 강수연이 살뜰하게 챙긴 후배 설경구도 애통한 마음을 털어놨다. 설경구는 "수연 선배, 오랜만에 통화하면서 할 이야기가 많으니 빨리 보자고 했는데, 곧 있으면 봐야할 날인데 현실은 선배의 추도사를 하고 있으니 너무 서럽고 비통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너무 비현실적이고 영화 속 한 장면이라고 할지라도 찍기 싫은 한 장면이다. 이 자리가 너무 잔인하다. 강수연 선배와는 '송어'(99, 박종원 감독)라는 영화를 찍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영화의 경험이 없던 나를 여기까지 세세히 이끌어줬다. 막내부터 버스기사님까지 주기적으로 모든 스태프를 챙겨주던 선배가 기억난다. 선배의 조수였던 것이 너무 행복했다. 알려지지 않았던 배우에게 앞으로 연기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전해줬다. 나의 영원한 사수였다. 모든 배우들에게 무한 애정을 준 걸로 알고 있다. 배우들을 너무 좋아했고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 우리 배우들의 진정한 스타였다. 새까만 후배부터 한참위 선배까지 다 아우르는 거인같은 대장이었다. 소탈했고 친근했고 섬세했고 영화인으로서 애정과 자존심이 충만했던 선배, 어디서나 모두를 챙겼다. 너무 당당해서 너무 외로웠던 선배.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너무 안타깝다. 그러나 선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별이 돼 빛을 줄 것이다. 나의 친구, 나의 누이, 나의 사부님. 보여준 사랑과 배려, 헌신 잊지 않겠다. 함께해서 행복했다. 너무 보고 싶다. 당신의 영원한 조수 설경구"라며 추도사를 전했다.


이어 문소리는 "언니 잘가시길 바란다. 언니의 한국 영화를 향한 마음 잊지 않을 것이다. 언니의 가오도 목소리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다음에 우리 만나면 같이 영화하자"고 눈물을 쏟았다.

강수연의 유작을 함께한 연상호 감독은 "강수연 선배 그 자체가 한국 영화다. 무거운 멍에를 강수연 선배는 무거워하지 않았다. '정이'를 준비할 때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두려움도 컸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배우가 강수연이었다. 한국 영화의 아이콘이자 독보적인 아우라를 전하는 강수연밖에 떠올르지 않았다. 용기를 내 강수연 선배에게 제안했고 '한번 해보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내게 굉장한 백이 생긴 기분이었다. 이 영결식이 끝나고 강수연 선배와 영원한 작별을 한 후 다시 편집실로 돌아가 강수연 선배의 얼굴과 마주할 것이다. 배우 강수연의 연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선배의 마지막 영화를 함께하며 선배의 마지막 영화를 동행하게 됐다. 선배의 마지막 백이 되어주겠다"고 울먹였다.


한국 영화의 큰 별 故 강수연의 빈소가 8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지난 5일 배우 강수연은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서울 강남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됐다. 고인은 1987년 영화 '씨받이'로 제4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1989년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발인은 11일이다.
사진제공=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
앞서 강수연은 지난 5일 오전부터 자택에서 두통을 호소하다 이날 오후 5시께 뇌출혈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사흘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지난 7일 오후 3시 사망했다.

고인의 장례식은 영화인장으로 치뤘고 상주는 강수연의 형제들이, 장례위원장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 맡았다. 장례고문으로는 김지미, 박정자, 박중훈, 손숙, 신영균, 안성기, 이우석, 임권택, 정지영, 정진우, 황기성이 이름을 올렸고 장례위원으로는 강우석, 강제규, 강혜정, 권영락, 김난숙, 김한민, 김호정, 류승완, 명계남, 문성근, 문소리, 민규동, 박광수(여성영화제), 박기용, 박정범, 방은진, 배창호, 변승민, 변영주, 봉준호, 설경구, 신철, 심재명, 양익준, 예지원, 원동연, 유인택, 유지태, 윤제균, 이광국, 이용관, 이은, 이장호, 이준동, 이창동, 이현승, 전도연, 장선우, 정상진, 정우성, 주희, 차승재, 채윤희, 최동훈, 최재원, 최정화, 허문영, 허민회, 홍정인이 마음을 모았다.

한편 강수연은 1969년 4살의 나이로 동양방송 전속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1983년 방영된 KBS1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80년대를 대표하는 '하이틴 스타'로 거듭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985년 영화 '고래 사냥 2'(85, 배창호 감독)를 통해 성인 배우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87, 이규형 감독)를 통해 그 해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꿰차며 '흥행 스타'로 인기를 입증했다.

'하이틴 스타'에서 '청춘 스타'로 등극한 강수연은 1986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영화 최초의 월드스타가 됐다. 삭발을 하며 연기혼을 보여준 '아제 아제 바라아제'(89, 임권택 감독)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도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했고, 1990년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89, 장길수 감독) '경마장 가는 길'(91, 장선우 감독) '그대 안의 블루'(92, 이현승 감독)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95, 오병철 감독) '처녀들의 저녁식사'(98, 임상수 감독) 등 숱한 화제작을 내놓았다. 특히 '경마장 가는 길'을 통해 제13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그대만의 블루'를 통해서는 제14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한동안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2001년 SBS 드라마 '여인천하'를 통해 완벽히 재기, 시청자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기도 했다. 당시 '여인천하'는 최고 시청률 35.4%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고 고인의 연기 경력 최초 전인화와 함께 'S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미국의 통상압력에 맞서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해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을 맡기도 했던 그는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정부의 간섭으로 위기에 처하자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2017년까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제를 위해 헌신했다. 뛰어난 배우를 넘어 전 세계에 한국영화를 알린 스타였고, 강력한 리더이자 여성 영화인의 롤모델이었던 그는 최근 연상호 감독의 신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이'에 출연하며 11년 만에 스크린 복귀를 알렸지만 안타깝게 타계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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