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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2부작 다큐멘터리 EBS 다큐프라임 '연애기계'는 진딧물부터 돌고래, 침팬지까지 12종의 다양한 '연애기계'들이 가지고 있는 짝짓기 전략과 그 안에 꿈틀대는 성욕과 광기를 다룬다.
최초의 성은 암컷이었을까? 수컷이었을까? 인도볼록진딧물
진딧물은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을 둘 다 할 수 있다. 진딧물은 살기 좋은 봄, 여름엔 암컷만을 낳는다. 하지만 기온이 내려가는 가을이 되면 진딧물은 수컷을 낳는다. 수컷은 태어나자마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암컷들을 찾아 짝짓기를 한다. 그렇게 유성생식으로 태어난 진딧물의 알은 추운 겨울을 버텨내고 이듬해 진딧물들을 다시 번성시킨다. 어쩌면 진딧물에게 있어 수컷은 가혹한 시기 종의 생존과 번성을 위한 도구로써 탄생한 것일지 모른다.
멸종위기 2급인 서해안의 흰발농게 수컷은 밥 먹는 것도, 집 짓는 것도, 모든 것을 한팔로만 한다. 다른 한 집게발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수컷의 큰 집게발은 다른 경쟁자 수컷들과의 신혼집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쓰인다. 뿐만아니라 수컷은 자기 몸무게의 반에 달하는 큰 집게발을 하염없이 흔들며 암컷을 신혼집으로 초대한다.
바닷속 예술작품을 만드는 물고기_아마미복어
2012년, 그동안 수많은 다이버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바닷속 '미스터리 서클(mistery circle)'의 비밀이 밝혀졌다. 지름 1.8m에 달하는 복잡한 무늬를 그려내는 건 일본 아마미섬의 아마미복어 수컷이다. 한 뼘 정도 크기의 작은 복어는 무늬를 그릴 뿐 아니라 그 위에 조개껍데기를 부숴 만든 장식품까지 얹어놓는다. 모두 암컷을 향한 구애이다. 완성된 작품의 한가운데에서만 암컷이 짝짓기하기 때문이다.
선배의 짝짓기를 도와주는 후배_긴꼬리마나킨
코스타리카에 사는 긴꼬리 마나킨 암컷의 취향은 독특하다. 긴꼬리마나킨 암컷은 듀오로 춤추고 노래하는 수컷과만 짝짓기한다. 그래서 긴꼬리마나킨 수컷들은 두 마리가 짝을 이뤄 구애한다. 하지만 두 마리 모두 짝짓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암컷이 짝짓기하는 수컷은 항상 더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수컷이다. 어린 수컷은 그렇게 몇 년 동안 짝짓기하는 선배 수컷을 지켜보다 그가 죽고 나서 자신의 후배를 받아야 짝짓기를 할 수 있다.
돌고래의 짝짓기_제주남방돌고래
보통의 어류는 암컷이 산란하면 수컷이 사정하는 방식으로 짝짓기가 이뤄진다. 하지만 포유류인 돌고래는 암컷의 몸 안에서 난자와 정자가 만나야 한다. 그런데 3차원인 수중에서 암컷과 수컷이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돌고래는 여러 마리의 수컷이 함께 암컷과 짝짓기를 한다. 한 수컷이 짝짓기하기 쉽게 다른 수컷들이 옆에서 도와주는 식이다. 그래서 수컷 돌고래들은 친구가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친구를 사귀고 친구들과 짝짓기 행동을 연습한다. 그런데 수컷들끼리의 짝짓기 연습은 단순한 연습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2부
공작만큼 화려한 거미의 구애_공작거미
공작처럼 화려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공작거미. 호주에 사는 공작거미 수컷은 기이하고 이름다운 무늬를 가졌다. 짝짓기 시기 수컷은 암컷을 찾아가 화려한 무늬의 배와 다리를 치켜올리고 춤을 추듯 빠르게 흔든다. 이때, 암컷의 평가가 중요하다. 암컷의 평가에 따라 수컷은 유전자를 남길 수도, 암컷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다
정자는 싸고 난자는 비싸다_달팽이
유성생식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아빠가 되거나 엄마가 되거나. 이 둘의 차이는 크다. 느릿하고 온순하기만 한 것 같은 달팽이들은 이 선택을 위해 짝짓기 중에 서로를 화살로 찔러대며 싸운다. 달팽이는 자웅동체, 즉 암수가 한 몸이지만 유성생식을 해야 다양한 새끼를 낳는다. 그래서 다른 짝을 찾아 서로의 난자에 자신의 정자를 제공하는 식으로 짝짓기를 한다. 이때, 달팽이는 자신의 몸에 들어오는 상대방의 정자들을 살정제로 죽인다. 임신과 출산까지 하는 것보다 정자만을 제공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건네는 정자도 상대방의 몸에서 모두 죽어버리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달팽이는 살정제로부터 자신의 정자를 보호하는 성분이 있는 '연시戀矢'(love Dart)를 서로에게 찌른다. 화살을 상대에게 찌르면 상대의 몸에서 자신의 정자가 살아남아 아빠가 되고 화살에 자신이 찔리면 들어오는 상대의 정자를 죽이지 못해 임신과 출산을 하는 엄마가 되는 것이다.
전희를 하는 새_꼬마물떼새
흔히들 성관계 전의 전희 과정은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어떤 새는 인간 못지않게 길고 복잡한 전희의 시간을 갖는다. 수컷 꼬마물떼새는 짝짓기 전 암컷에게 다가가 행진하듯 다리를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를 한다. 수컷이 조금이라도 암컷의 기준에 어긋나게 행진하면 암컷은 가차 없이 자리를 뜬다. 뿐만아니라 짝짓기 전에는 항상 암컷의 등을 발로 마사지해준다.
후희를 하는 새_장다리물떼새
우리나라의 철새 장다리물떼새는 전희뿐 아니라 짝짓기가 끝난 뒤 후희의 시간까지 가진다. 짝짓기 전 장다리물떼새 암컷이 수컷에게 고개를 숙여 신호를 주면 수컷은 물에 부리를 씻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렇게 암컷과 수컷 모두 준비가 되면 짝짓기를 한다. 그 방식은 여느 새들과 같지만 이들은 짝짓기가 끝난 뒤에 서로의 부리를 비비고 행진을 하는 식으로 여운을 나눈다.
백년해로의 비밀_두루미
일본 홋카이도의 두루미는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영역 동물이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남들이 영역을 침범할 생각조차 들지 않게끔 부부간의 결속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결속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루미는 약 30년 평생을 일부일처제로 살며 서로 합을 맞춘다.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시간이 짝짓기하는 시간보다 훨씬 길다.
권력과 짝짓기_침팬지
오랫동안 침팬지 사회의 위계는 폭력에 의해 결정되는 힘의 질서라고 여겨졌다. 실제로 수컷 침팬지 사회에서 힘과 덩치는 중요하고, 서열을 결정짓는 요인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서열을 결정짓는 또 다른 한 축은 바로 집단의 지지이다. 이를 위해 우두머리 수컷은 서열 2위와 3위부터 아주 낮은 서열의 침팬지들까지, 열심히 털을 손질해준다. 뿐만아니라 다른 수컷들이 가임기의 암컷과 짝짓기하는 것도 막지 않는다. 침팬지들은 베풀어야만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목숨과 성욕 사이의 충돌_왕사마귀
수컷 사마귀도 생존 욕구가 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암컷에게 접근하며 암컷이 준비되어있지 않다면 피한다. 하지만 짝짓기가 시작된 뒤부터는 돌이킬 수 없다. 수컷 사마귀는 머리가 먹히고 있는 중에도 생식기를 움직인다. 이때 수컷 사마귀는 자신의 희생 덕분에 수없이 많은 새끼들이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고 건강하게 태어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아니면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기계처럼 움직일 뿐일까? 끝.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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