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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전해진 넥슨발 '핵폭탄급'의 소식이 한국 게임산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한 판세 전환인가?
김정주 대표는 지난 1994년 넥슨을 창업해 홈페이지 등을 제작하다가 카이스트 박사 과정 동기인 현재의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와 의기투합, 국내 최장수 온라인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게임산업에 뛰어들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될 것을 간파하고 온라인게임 시대를 연 것이다.
김 대표의 승부수가 제대로 통한 것은 '던전앤파이터'를 서비스하고 있는 네오플의 인수다. 당시 '던전앤파이터'가 주로 국내에서 한 해 500억원 정도의 매출에 그쳤는데 2008년에 이를 3800억원에 인수, 업계에선 지나친 출혈이라는 냉소가 쏟아졌다. 하지만 '던전앤파이터'는 서비스 13년만에 총 매출 100억달러(약 11조원)을 돌파했으며, 2017년에만 1조 63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초대박 게임이 됐다.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현재 넥슨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이니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이후 FPS게임 '서든어택'과 'FIFA 온라인' 시리즈 등 당시 다른 게임사들이 서비스를 하고 있는 히트작들을 과감한 '베팅'을 통해 가져오면서 국내 최대 게임사로 성장시켰다. 돈으로 게임 IP와 유저를 한꺼번에 산다고 해서 '돈슨'이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치열한 국내 온라인게임 경쟁 구도에서 가장 먼저 1조원과 2조원 매출 시대를 열만큼 넥슨과 김 대표는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2011년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넥슨 일본법인을 상장시키면서 김 대표는 철저히 '은둔의 경영자'가 됐다. 지주사를 만들고 뒷선으로 물러나 넥슨의 전체적인 큰 그림은 그렸지만, 개발 부문에선 많은 권한을 위임하고 본인은 자기계발과 함께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유모차 업체인 스토케를 인수하고, 브릭 제조에 나서는가 하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사업에 관심을 기울여 국내에선 코빗, 그리고 유럽에서 비트스탬프 등 암호화폐 거래소를 인수한 것이 바로 그 것이다.
김 대표가 NXC 입장발표를 통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롭고 도전적인 일에 뛰어들 각오를 다졌다'는 표현이 이를 뜻하는 것이라고 업계에선 내다보고 있다. 학생 시절 '일본에서 닌텐도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유저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후 닌텐도를 뛰어넘는 게임회사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자서전에서 밝힌 게임에 대한 열정이 이제 식으면서, 또 다른 도전의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이미 네오플을 인수할 때부터 더 이상 개발자가 아닌 게임 사업가라는 닉네임이 어울렸던 김 대표이기에,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해석인 셈이다.
성장성에 대한 의문부호 때문인가?
바로 이런 측면에서 한국 게임산업에는 상당히 우울한 소식이라 할 수 있다. 김 대표가 '냉철한 승부사'와 'M&A의 귀재'임을 감안하면 넥슨의 가치가 꼭지점을 찍었다는 얘기도 된다.
넥슨은 지난 2017년 2조 2987억원의 매출과 8856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데 이어 2018년 2조 5000억원 이상의 매출과 1조원 이상의 영업익이 예상되는 등 역대 최고점을 계속 경신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성장율은 정체되고 있으며 온라인게임, 특히 '던전앤파이터'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가 이미 2017년 3월부터 한국 게임에 판호(게임 서비스 권한)을 내주지 않고 있는데 이어 지난해 청소년 보호라는 명목으로 온라인게임 종량제와 셧다운제 등을 도입하며 자국 게임산업에도 강한 규제를 하기 시작한 것은 넥슨으로선 엄청난 악재임은 분명하다. '던전앤파이터'와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의 중국내 서비스와 메신저 등을 통해 중국을 넘어 세계적 ICT기업으로 성장한 텐센트를 주로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면에선 더욱 그렇다. 게다가 자체 개발 신작 가운데 초대박 게임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으며, 엄청난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모바일게임에서도 다른 경쟁사에 버금갈만한 히트작을 내지 못하면서 내부에서 구조조정설도 조금씩 제기되고 있는 등 시장에선 넥슨의 성장성과 개발력에 대한 의문부호가 계속 달리며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다.
이런 면에서 만약 다른 회사로 매각이 될 경우 개발동력을 잃고 개발진의 대거 이탈이 발생할 위험성도 있다. 또 최대 10조원에 이르는 대형 빅딜이라 텐센트 등 해외 게임사들이 유력한 매수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IP의 해외 유출 역시 우려되는 상황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제 게임은 단순한 놀이수단이 아니라 한 나라의 산업 기술력과 함께 문화적 특성까지 담긴 종합 콘텐츠이다. 또 IP 라이선스 전개는 전세계 게임사들의 공통 화두일만큼 히트 IP 확보에 혈안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가장 핵심인 넥슨이 국내가 아닌 해외 게임사로 넘어간다는 것은 지배력 상실이라는 측면에선 상당히 부정적 소식임은 틀림없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또 다른 면에선 국내 게임산업 환경이 여전히 엄혹하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보수에서 진보 정권으로 바뀐 후 게임 규제보다는 진흥에 방점을 찍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으로 느낄만한 긍정적 요소가 별로 없는데다, 여전히 게임을 '사회악'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새로운 인력들의 유입을 막고 있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 확률형 아이템이나 WHO 질병코드 등록 예정 등 국내외 유저나 이해단체로부터 견제를 받을만큼 사회를 이루는 중요한 콘텐츠로 성장한 것도 산업계에선 분명 큰 부담감이 되고 있다. NXC 관계자가 "국내 규제 등에 대한 피로감을 김 대표가 호소한 적은 없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업 전개만 하기에는 힘들어진 현 상황이 김 대표의 매각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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