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트렌드를 움직이는 사람들, 방송·예술·라이프·사이언스·사회경제 등 장르 구분 없이 곳곳에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리더들을 조명합니다. 2017년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에디터들이 100명의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그 스물여덟 번째 주인공은 특유의 다크웨어와 확실한 콘셉트의 패션쇼로 세계팬들을 사로잡은 디그낙 강동준 디자이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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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라기 보단 대놓고 불안하게 만든 거 아닌가요?
목적했던 그 불안감이 정말 이렇게 까지 사람들에게 느껴질 줄은 몰랐죠. 다들 쇼가 끝나고 물어보는 게 '앞 부분에 모델 안 나오고 서있던 거 그거 뭐야'였으니까.
- 목적한 바를 달성해서 기분이 좋을 것 같은데요.
원래는 영상을 이용해 조금 더 멋스럽게 연출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영상으로 하면 영상에 집중해야하고 불안함이 전달이 잘 안될 것 같더라고요. 또 스모그를 엄청 쎄게 해 부유물을 띄우려고도 했는데 불확실할까봐... 그래서 연출가와 제가 모델의 실루엣만 비추는 게 더 망령처럼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진행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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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나랑 약속한 건 1분이었는데 연출 실장님이 일부러 조금 더 끈 것 같아요. 30초 정도 더?
- 쇼가 시작하고 모델이 안 나온 1분 남짓. 정말 길게 느껴지던데.
백 스테이지에 있는 저랑 모델들은 일부러 늦게 나가는 걸 아니까 괜찮았어요. 그런데 문득 '밖에 있는 관객들에겐 이 시간이 상당히 길게 느껴지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30~40초만 끄는걸 고민했었는데 어중간하게 짧으면 일부러 시간을 지연했다는게 전달이 안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최소 1분을 끌려고 한거죠. 다행히도 연출 실장님이 더욱 극대화해주셨고.
- 1분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결정한 건가요?
노래 켜놓고, 아무 것도 안하고 기다리면서 최적의 시간을 테스트했죠. 멍하니 있으면 안되더라고요. 계속 '언제 끝나지' 라고 집중도 해야 하는거죠. 예상했던 1분 보다 더 지연시킨게 효과가 커졌어요. 연출 실장님한테 고맙다고 말씀드렸죠. 저는 백 스테이지에 있어서 관객의 반응을 못 봤고, 실장님은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의 반응을 다 지켜보면서 연출하셨으니까. 정말 강심장이에요(하하).
- 진짜 '실수' 라고 생각했던 관객들도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정말 실수였다면 모델이 멍하니 서있지 않고 다시 돌아갔겠죠. 한 지인이 쇼가 끝나고 '쇼를 보고 나니 실수가 아니었다'라고 SNS에 올려주더라고요. 정말 고마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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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본 영환데 정말 인상깊었어요. 새하얀 눈, 그리고 주인공과 관객을 조여오는 긴장감. 영화 내용에서 주인공 디카프리오가 죽지 못하잖아요. 제목 '레버넌트'의 뜻 머무는자, 돌아갈 수 없는자처럼. 결국에 우리나라 말로 바꾸면 망령이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주제를 정하고 동양적인 단어로 맞추는 거에 맛들인 것 같아요.
- 주제를 동양적인 단어로 바꾼다? 어떤 뜻인가요.
다음 시즌 주제가 '인연'이에요. '모든지 다 연결되어있다' 이런 느낌이죠. 근데 인연을 표현할 외국말이 없어요. 흔하게 쓰는 게 '낫 오브 데스티니, 페이트' 같은 건데 너무 뻔하고 의미가 다 안담기기도 하고. 그래서 고심하다 보니까 '니타나'라는 단어를 찾았는데 불교의 인연이란 뜻이더라고요. '관계'보다 무게감 있고 '업보'보단 가벼운 '인연'의 의미를 잘 담은 것 같아요. 그래서 니타나를 주제로 할 지 고민하고 있어요. 단어도 예쁘고.
- 동양적인 주제를 외국어로 번역하고, 또 의상에 담고. 상당히 어려울 것 같은데.
해외 세일즈가 많기 때문에 초반에 그걸 표현하는 단어, 영어까지 잡고 가는 게 필요해요. 저번 시즌 '윤회'라는 주제도 한국어로 하면 정말 쉬운데 영어로 설명하려니까 버스 데스 리버스(Birth Death Rebirth), 싸이클링 오브 라이프(Cycling of life) 등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보완적인 요소가 필요한거죠. '망령'이라는 이번 쇼의 주제에 '레버넌트'를 더한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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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도 처음엔 의아했어요. '옷 파는데 이런게 상관이 있을까?'. 하지만 의상을 사가는 해외 바이어들도 다시 옷을 팔아야 하잖아요. 그럴 때 고객이나 2차 바이어에게 의상의 콘셉트를 설명할 때 이런 이야기들이 필요하죠. 해외 유명 편집샵, 사이트들도 의상의 정보와 주제를 띄어놓기 때문에 필요하고. 프레스 뿐만 아니라 바이어들도 이런 콘셉트를 필요로 해요.
- 메세지, 콘셉트를 의상에 담는 시도들의 의미가 있는 거네요.
특히 자신의 샵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바이어들이 이런 콘셉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요구해요. 그냥 손님이 와서 옷 보고 사서 나가는 그런 샵 말고 직접 점원이 의상의 주제와 콘셉트를 설명해주는 그런 부띠끄 같은 샵들이 주로 그렇죠.
- 디그낙의 옷을 사는 분들도 이런 가치를 알아주시는 걸까요?
보통 사람들은 사실 옷이 예쁘기만 한걸 바랄 수도 있죠. 이런 테마나 주제를 따지는 고객이 아니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요즘엔 어느 시즌, 어떤 콘셉트의 의상인지 알고 싶어하는 고객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해외와 국내 모두. 디자이너 브랜드이기 때문에 넘버링 같은 것도 존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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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패션위크에 컴백한 이후 해외쇼를 서지 않았어요. 제가 밀라노에서 4번 쇼를 할 동안 부를 수 없던 사람들이 서울 패션위크에 다 오니까. 정구호 감독님의 정책이 좋았죠. 그래도 이번엔 해외 쇼에 나가려고 준비중이에요. 런던으로.
- 자유분방한 런던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기대되는데요?
저도 그런 생각이 좀 들어요. 최종 목표는 항상 파리에요. 그런데 지금 드는 생각은 더욱 이슈를 만들고 정착한 후 파리로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무모하더라도 파리에 들어가서 살아남겠다'였는데 지금은 좀 지친 것 같아요. 안전하게 나랑 더 잘 맞는 시장에서 먼저 디그낙을 보여주고 자리 잡았을 때 알아서 파리로 들어가려고요.
overman@sportschosun.com, 사진=이정열기자 dlwjdduf7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