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트렌드를 움직이는 사람들, 방송·예술·라이프·사이언스·사회경제 등 장르 구분 없이 곳곳에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리더들을 조명합니다. 2016년 스포츠조선 엔터 스타일팀 에디터들이 100명의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그 아홉 번째 주인공은 메이크업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황방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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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아티스트 황방훈, 그의 삶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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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탑 아티스트신데도 꾸준히 노력하시는군요.
전 남들보다 출발이 더뎠기 때문에 훨씬 더 노력해야 해요. 재능이 없는 것보다 암울한 건 노력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 있는 것도 그 의지조차 없다면 무슨 일도 할 수 없거든요.
-사업하랴, 방송하랴 하루가 정말 바쁘실 것 같은데, 신경써야 할 것도 많을 것 같아요.
메이크업하는 시간이 길어 할 수록 생각이 더 많아져요. 저는 선배들이 닦아 놓으신 길을 가고 있고, 저도 후배들이 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돕고 있는데요. 메이크업계는 진로가 정형화 돼 있기 때문에 선배가 그 다음 레벨에 도전 해야 후배들이 뒤를 따라오게 할 수 있어요. 항상 그 고민을 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어떤 직업일까요?
모든 여성들은 각자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만 '어떻게 생기면 예쁘다' 라는 이미지를 공유하고부터 그게 기준이 됐어요. 반면 한 걸음 더 나아간 아티스트는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직업입니다. 천편일률적인 미인 상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황방훈 원장님이 생각하는 메이크업이란 무엇인가요?
메이크업은 '전날 밤 쓴 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일기를 다음 날 아침에 읽으면 손발이 오그라들잖아요. 제 메이크업이 항상 그래요. 당시 감성 취해서 한 후에 돌이켜보면 '왜 이렇게 했을까?' 다시 생각하게 돼요. 정말 마음에 들었던 메이크업은 한 손에 꼽을 정도에요. 끊임 없이 반성이 되는 게 메이크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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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실 미술은 5년, 서예는 10년을 했어요.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메이크업과의 차이점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이는데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미술은 그림을 위해 도화지가 존재하지만, 메이크업은 도화지를 위해 그림이 존재하죠. 그리는 방법이 달라요. 둘의 연관성은 색을 보는 감각 정도가 있을 것 같네요. 사실 미술을 했던 것 보다 시골에서 자란 감성이 도움이 더 많이 됐어요.
-참 의외군요. 그 감성이란 어떤 것을 말하나요?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셔서 시골에서 살았어요. 시골감성은 비오는 날의 분위기, 자연에서 느껴지는 감정 등이 있죠. 메이크업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뤄지잖아요. 그 사람이 가진 감성을 극대화 하는 작업이 메이크업이라 생각해요. 이 사람의 감성을 그 날에 맞게 표현해 주는 게 중요하죠. 사람 간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이 메이크업이기 때문에 그 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감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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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현재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아니었다면, 미술이나 서예를 하고 계셨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메이크업은 저에게 딱 맞는 천직이라 생각해요. 미술은 시작하면서부터 '언제 그만두지'를 생각했지만 메이크업은 시작하면서부터 '어디까지 갈까'를 고민했어요. 미술을 할 때는 내 맘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때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을 정도였어요. 물론 메이크업도 힘들었지만 미술보다는 해답을 빨리 찾았죠. 일단 메이크업을 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어요. 메이크업을 하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미술은 싫었지만 서예는 했을 것 같네요.
-취미로 서예는 어떠신가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25년만에 서예 붓을 처음 잡아봤어요. 예전 실력이 나올까 조마조마했는데 아직 녹슬지 않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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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TV에서 직업소개 프로그램을 봤어요. 볕 잘드는 곳에서 메이크업을 하는 여자의 영상이 나왔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되게 예쁘다. 그래서 메이크업의 꿈을 꾸기 시작했죠.
-시골에서, 그것도 남자가 메이크업을 시도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네, 시골에서 남자가 메이크업하러 서울 간다고 했을 때 집안 반대가 어마어마 했어요. 어머니 아버지께서 '성공하기 전 까지는 서울에 공무원 준비 한다고 말해달라'고 부탁까지 하실 정도였어요.
-서울에 여차저차 왔더라도 편견이 심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메이크업을 시작하던 20년 전에는 제 메이크업을 받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남자가 하는 메이크업을 모두가 싫어했어요. 메이크업을 배울 때도, 두 명이 짝을 지어서 시연 모델을 해 줘야 하는데 저와 짝이 되면 남자를 대상으로 메이크업을 해야 하니까 저랑 짝이 되는 걸 싫어했어요. 그만큼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연습해볼 곳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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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용지에 '무료 메이크업 해드립니다' 라고 적고, 전화번호를 적고 전단지를 붙이고 다녔죠. 처음에는 전화를 받으면 남자 목소리가 들려서 끊으시는 분도 많았어요.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시연할 곳이 없었던 게 가장 힘들었죠.
-성공한 지금은 부모님께서 너무 좋아하시겠네요.
메이크업 경력 20년 동안 아침마당'에 출연했을 때 아버지께서 가장 기뻐하셨어요. 뷰티프로그램들은 부모님들이 보시기 힘든데 KBS1 '아침마당'은 중장년층이 꼭 보시잖아요. 아버지가 무뚝뚝하신 분인데 거기 연달아 출연했을 때는 너무 좋아하셨어요. 사실 몇달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그 전에 아침마당의 모습을 보여드린 게 감사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길을 선택한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메이크업의 화려함만 보고 이 직업에 뛰어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여러 친구들을 가르치다 보면, 메이크업의 진정한 매력과 희열이 좋은 게 아니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거나, 남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래서 전 칭찬보다는 쓴 소리를 더 많이 해줘요.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은?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면 인생의 단맛은 다 볼 수 있어요. 돈, 명예 모두가 생기지만탑 아티스트가 되는 건 로또 당첨보다 힘들어요. 복권은 운이지만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단맛은 수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또, 감성, 재능이 있어도 인내가 없다면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될 수 없어요.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려면 길게는 10년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요. 그 때까지 다양한 메이크업을 공부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됩니다. 그게 제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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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향기를 굉장히 좋아해요. 기분을 좋게 하고, 또 다른 감성으로 안내하는 문 같은 존재에요. 이제는 향기가 자신의 시그니처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해요. 향기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되는 시대라고 할까요? 그 사람에 대한 정보, 혈액형, 분위기 등을 다 담는 향을 많은 사람들에게 만들어 주는 게 제 꿈이에요.
-갖고 계신 향기 브랜드 우이 101은 그 꿈의 일환인가요?
네, 우이는 불어로 '좋다' 라는 의미인데, 행복의 시작과 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죠. 캔들, 디퓨저, 리빙 퍼퓸까지 다양하게 만들고 있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외국으로 조향을 공부를 떠나고 싶어요. 메이크업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향기 또한 '감성'을 표현하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거든요.
yangjiyoon@sportschosun.com, 사진=이새 기자 06sejo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