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미생은 완생이 되면 안되나.
당초KBS2 '청춘FC 헝그리일레븐'이 시작된 것은 한국인 기업가가 인수해 화제를 모은 벨기에 축구 클럽 AFC 투비즈가 현재 프로그램 연출을 맡고 있는 최재형PD에게 자신의 구단에 데려갈 축구 인재 한 두명을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PD는 축구는 팀 스포츠라는 점에 착안, 오디션 프로그램 대신 외인구단 형식의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한때 축구 선수를 꿈꿨지만 여러가지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혀 꿈을 잃었던 미생들이 안정환 이을용 이운재 등 역대급 축구선수들을 만나 진영을 갖춰가는 모습은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꿈을 잃어버린 미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모습이 '칠포세대'란 말이 나올 정도로 가혹한 현실에 놓인 이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기 때문. 그런데 정작 이들이 기회를 잡으려는 순간 모든 반응이 변했다.
바로 K리그 챌린지 올스타전이다.청춘FC는 14일 오후 4시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선발팀과 맞대결을 벌인다. 축구 미생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끝판왕'과 붙게된 셈. 동시에 언제나 꿈꿔왔던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경기에서 부각되면 정식 구단 입단 기회도 잡을 수 있고,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평생을 그려왔던 꿈의 대전을 펼쳤다는 것 만으로도 한을 덜어낼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프로그램 기획 의도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엔딩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잡음이 이어졌다. 축구계에서 "무리한 희생"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
축구팬들의 입장은 이렇다. 리그 중 무리하게 경기에 출전했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겠느냐는 게 골조다. 축구 선수들을 구단 홍보에 이용하려는 K리그 측의 문제라는 게 중론이다. 또 하나. 왜 기회를 잡지 못했던 이들을 위해 현역 선수들이 희생돼야 하냐는 의견도 나온다. 바르셀로나 대 K리그 올스타전과 같은 모양새가 될 것이란 우려도 이어진다.
KBS 측은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바 없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방송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를 두고 제작진의 고민도 깊다. 프로그램 기획 의도 자체가 한번 실패했던 이들에게 꿈을 되찾아 주자는 것이었던 만큼, 어떻게든 기회를 주자는 게 이번 경기의 본취지다. 물론 한창 경기를 뛰어야 하는 선수들을 무리하게 차출한다면 현역 선수들에게 피해를 줄 게 자명한 노릇이다. 그래서 지명 선수 및 인기 선수가 아닌, 이제까지 경기 출전을 거의 하지 못했거나 후보군에 속하는 선수들을 위주로 올스타전을 꾸리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
프로그램이나 홍보를 위해 선수들이 희생을 강요받으면 안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현역 선수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이번 올스타전을 단순히 치열한 경쟁을 넘어선 현역 선수들이 악역이 되고, 그보다 낮은 경쟁을 뚫은 축구 미생들이 선역을 맡는다는 이분법적 사고로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더욱이 이제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과 청춘FC의 경기가 성사된다면 양측 모두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미생은 영원히 미생으로 남아야 할 것인지, 그들은 완생이 되어서는 안될 일인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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