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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도' 송강호, 그는 숨소리까지 영조였다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5-09-25 08:09


영화 '사도'는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송강호)와 단 한 순간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유아인),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은 작품이다.
삼청동=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09.16/

[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송강호. 이름 세 글자로 충분하다. 연기의 거장. 그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감탄의 말조차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는 또 한번 자기 자신을 넘어섰다. 연기의 깊이와 폭이 범접할 수 없는 경지였다. 지난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트로피가 주어졌다. 당연한 수상이다.

그래서 그에 대해 더는 말이 필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 '사도'에서는 할말을 잃었다. 아들 사도를 뒤주에 가둬 죽게 만든 아버지 영조. 패륜조차 이해된다. 그의 연기에 설득 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송강호는 숨소리까지 영조였다.

송강호가 들려준 캐릭터 연구는 흥미진진한 역사 강의를 방불케 했다. 스크린에서 2시간에 압축된 기나긴 역사의 행간을 채우려는 노력이 엄청났다. "어쩔 수 없었던 부자관계를 이해하니 영조대왕에게 공감되고 동화되더군요. 관객에겐 영조대왕의 모습이 폭압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민을 느끼기를 바랐어요. 영조대왕이 천한 무수리 소생이라는 콤플렉스에 괜한 오기와 투정을 부리잖아요. 나약하고 무력한 한 인간의 모습인 거죠."

극중 영조는 사도가 국사를 잘 처리하는 모습에 칭찬은커녕 도리어 신하들 앞에서 야단을 치고, 조금만 공부를 게을리해도 매섭게 혼을 낸다. 살짝 풀어진 대님까지 꼬투리를 잡아 혹독한 비난을 했다. 괴팍하고 변덕스럽다. 그런데도 송강호가 그려낸 영조에게선 외로움과 열등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사도가 정치를 잘하는 것 자체가 영조에겐 절대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느껴졌을 겁니다. 이를 테면 위협감 같은 거죠. 그래서 기이할 정도로 사도를 호통치죠. 하지만 그 안에 고통과 외로움이 담겨야 영조대왕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아들만큼은 자신처럼 외로운 군주가 아닌, 백성들에게 추앙받는 완벽한 왕이 되길 바랐을 겁니다. 그런 아들이 자신의 뜻에서 벗어나 점점 실망감을 주니 엄청난 좌절감을 느꼈겠죠. 완벽한 왕재를 원하는 마음은 영조대왕이 아닌 다른 왕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송강호는 극중 40대부터 80대까지 40여년의 시간을 연기한다. 분장 없이 목소리만 들어도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영화 촬영 중 숙소에서 벽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성대에 일부러 생채기를 내 목소리톤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준익 감독의 생생한 증언이다. "노회한 정치가이자 외로운 아비의 척박한 정서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어요. 노화가 아닌 인생 역경을 표현하기 위해 목소리나 언어의 느낌이 중요하다고 봤어요."


죽은 사도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영조가 울음을 토해내는 장면. 사도에 몰입했던 관객들이 영조와 화해하는 순간이다. 대사는 울음에 뭉개져 들리지 않지만, 그래서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 대사를 복원하면 이렇다. "아이고, 이놈아, 너는 어찌하여 이 늙은 애비가 이 지경이 이르도록 하느냐." 송강호는 "감정에 충실하다 보니 그렇게 표현이 됐다"며 "돌이켜 보니 그 상황에서 대사가 정확하게 들리면 오히려 관객들에게 일부러 얘기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다"고 설명한다.

인터뷰 내내 송강호는 영조를 꼭 '영조대왕'이라 호칭했다. "친구도 아닌데 영조라 부르기엔 너무 외람되죠. 한참 후손인데, 감히 죄송하잖아요." 민망한 듯 '껄껄껄' 호탕한 웃음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웃음에서도 영조에 대한 존경심이 읽힌다.


영조를 변호하는 송강호가 만약 20대로 돌아가 사도 역을 제안받는다면 어떨까. "유아인이 그러더군요. 사도세자와 연산군을 꼭 연기해보고 싶었다고. 젊은 배우들이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에 관심 갖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20대였다면, 글쎄요. 제게 과연 제안이 왔을까요?(웃음)"

아버지이자 아들인 송강호의 모습도 궁금해 물었다. "경상도 남자라서 그렇게 다정다감하고 살갑지는 않습니다. 아들과는 주로 마음속 대화를 나누죠. 영조대왕과의 유일한 공통점이랄까요. 집에서 소통의 부재를 겪고 있죠.(웃음)"

송강호가 이 영화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도 바로 소통과 화해다. 부모세대의 삶의 방향성과 자식세대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시대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다가가는 데 이 영화가 소통의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 기성세대로서, 또한 선배로서,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한 송강호의 인생 조언을 구했다. "시행착오는 누구나 겪습니다.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어요. 완벽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거지요. 부족함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되, 그걸 인식하는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중요해요." 이 말은 송강호 자신이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되새기는 좌우명이기도 하다.

'사도'를 통해 송강호라는 배우는 더 크고 넓어졌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배우의 본령을 잊지 않는다. "관객이 이미 알고 있지만 잠시 잊고 있던 감정을 작품을 통해 다시금 불러일으키기고 일깨우는 게 배우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송강호의 목소리가 뜨겁다. 영화와 연기만큼 그를 일깨우는 존재도 있을까. "자극이나 각성을 주는 사람이나 매개체는 딱히 없어요. 바꿔 말하면 제겐 모든 것이 다 자극이고 각성이란 얘기겠죠." suzak@sportschosun.com


영화 '사도'의 배우 송강호가 1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커피숍에서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영화 '사도'는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송강호)와 단 한 순간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유아인),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은 작품으로 16일 개봉 예정이다.
삼청동=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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