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 게임에서 모집단이 커지면 결국 평균치에 접근하는 법.
올 들어 부진을 면치 못하던 한국 영화가 여름 성수기를 맞아 깜짝 부활하며 극장가를 주도하고 있다. 한국영화 부흥을 이끄는 투톱은 '암살'과 '베테랑'.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동 시기 1000만 돌파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올 최다 관객 영화를 놓고 두 영화가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펼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영광의 천만 테이프는 최동훈 감독의 '암살'(제작 ㈜케이퍼필름, 제공/배급 ㈜쇼박스)이 먼저 끊었다. 지난달 22일 개봉해 올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 스코어를 기록중인 '암살'은 광복절인 지난 15일 오전 8시 누적 관객수 1000만 명을 돌파했다. 독립군 활약을 담은 영화라 광복절 1000만 돌파가 더욱 뜻깊다. 개봉 전 이 영화는 '최동훈의 흥행불패 vs 일제시대 징크스'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최동훈 감독은 충무로 대표적 흥행 보증수표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도둑들' 등 손대는 작품마다 흥행과 화제를 몰고온 미다스의 손. 특히 지난 2012년 광복절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도둑들'에 이어 정확히 3년 만에 연속 1000만 돌파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불안 요소가 있었다. 시대 배경이 일제시대라는 점이었다. 그동안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는 실패한다'는 묘한 징크스가 있었기 때문. 관심을 모은 기싸움. 결국 최동훈의 흥행력이 일제시대 징크스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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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 이정재, 하정우, 이경영, 최덕문, 김의성, 김해숙, 박병은, 허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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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속 천만 영화를 탄생시킨 최동훈 감독은 "'암살'을 사랑해주신 관객분들께 깊이 감사 드린다. 나에게는 도전이자 정말 오랫동안 만들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관객분들과 뜻 깊은 소통을 나눈 것이 정말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까지 이들의 엇갈린 선택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그린 이야기. 이름없는 독립군의 사진 한 장에서 출발,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기록을 모티브로 하여 가상의 인물들이 펼쳐나가는 허구의 암살 사건을 그려냈다. 흥행요소는 충분했다. 우선 이정재 하정우 전지현 이경영 조진웅 최덕문 오달수 등 국가대표급 명배우들이 총출동해 각자의 영역에서 모자람 없는 열연을 펼쳤다. 여기에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와 실감나는 액션에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 모습을 사실감 있게 살려 이목을 더욱 집중시켰다.
'암살'과 함께 한국영화의 쌍끌이 흥행을 이끌고 있는 작품은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제공/배급 : CJ엔터테인먼트, 제작 : ㈜외유내강)이다. '베테랑'의 천만 돌파 가능성은 충분하다. 흥행세가 보름 앞서 출발한 '암살' 못지 않다. 지난 5일 개봉 이후 12일째인 16일 누적 관객 수 600만명을 돌파했다. 개봉 이후 무려 11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장 기간 정상 유지다. 향후 전망도 밝다. 이미 차트 역주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봉 이후 그래프가 서서히 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재미있다'는 강력한 입소문을 탄 '베테랑'은 오히려 반대다. 토요일인 지난 15일 '베테랑'의 관객 수는 82만7915명으로 개봉 첫 주 토요일(8일)의 71만4935명보다 10만명 이상 많았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향후 견제 세력이 강력하지 않다. 지난 주 개봉한 '협녀, 칼의 기억'와 '미쓰 와이프'의 기세가 '베테랑'의 흥행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21인1역이란 독특한 컨셉트로 오는 20일 관객을 만나는 '뷰티 인사이드'의 돌풍을 피한다면 한동안 '베테랑'의 승승장구는 이어질 전망. 물량 공세를 앞세운 할리우드 대작도 눈에 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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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600만 관객 기념 컷. 왼쪽부터 장윤주 정만식 황정민 류승완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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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최대 장점은 '재미'다. 롤러코스터를 탄듯 124분이 마치 12분4초처럼 후다닥 지나간다. 안하무인인 재벌 3세 조태오를 쫓는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과 팀원들의 활약을 그린 범죄 액션 영화. 사실 틀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스토리를 진화한 영화 건축가 류승완 감독이 역대급 수작으로 탈바꿈시켰다. 류 감독이 마련한 뼈대를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장윤주 정웅인 정만식 진경 등 연기 프로들의 열연으로 채웠음은 물론이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시원한 액션에 예정된 절정을 향해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긴장감이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여기에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마지막 순간을 장식한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나쁜 놈이 응징당하는 권선징악이 이처럼 시원하고 폭발력 있게 표현되는 영화를 본지도 꽤 오랜만이다. '재미+의미'가 동시에 담긴 수작이라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 기세라면 천만 돌파는 결코 꿈이 아니다.
문제는 천만을 언제 돌파하느냐의 문제다. '암살'이 개봉해 있는 동안 돌파해야 동시기 천만 돌파라는 새로운 역사가 세워진다.
광복절 사흘 특별 연휴가 지나갔고, 방학이 끝나가는 시점이라 누적 관객 증가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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