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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진 눈빛, 낮고 느릿한 목소리,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 미묘한 차이지만 분명하게 감지되는 변화의 기운들이 배우 김동욱을 감싸고 있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못 말리는 결혼', '파트너', 영화 '국가대표', '반가운 살인자', '로맨틱 헤븐' 등 그의 이전 출연작과 비교하면 그 변화가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예전엔 밝고 건강했다. 하지만 지금의 김동욱은 확실히 묵직하고 진하다.
김동욱은 '민폐 캐릭터만 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김갑수, 안내상, 박철민, 진희경, 이도경, 오지호, 정유미 등 연기파 배우들로 꽉 채워진 라인업. 그는 연신 감탄했다. "다들 연기의 고수들이잖아요. 연기를 잘하시는 분들이라서 정말 부담됐어요. 나만 잘하면 된다는 각오로 임했죠."
특히 '연기의 초고수' 선배들과의 호흡은 짜릿했다. 안정감과 믿음이 있으니 저절로 몰입이 됐다. "선배들과 연기하다 보면 그냥 확 빠져들게 돼요. 그 순간엔 계산하지 않은 연기, 본능적인 연기가 나와요. 선배님들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좋은 장면이 완성돼 있더군요. 선배님들이 저력에 매번 감탄했습니다."
군 입대 전 영화 '후궁 : 제왕의 첩'으로 호평받았던 김동욱은 제대 후 안방극장 복귀작으로 또 다시 사극을 선택했다. 전작의 그림자를 지워내야 하는 부담감에도 도전을 감행한 이유 또한 '연기'에 답이 있었다. 대본을 받아본 뒤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하고 싶다'는 강렬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고 한다. "제게 '후궁'은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작품이에요. '하녀들'의 은기도 편한 사랑을 하는 인물이 아니라서 내가 또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죠. 게다가 영화도 아닌 드라마잖아요. 그런데 왠지 이 작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해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과정이 힘들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설렘이 더 컸습니다. 해냈을 때의 성취감과 보람, 배우로서의 자부심이 저를 계속 도전하도록 이끄는 것 같아요."
감독의 '컷' 소리를 듣고 나서도 방금 전까지 무얼 연기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 순간이 많았다. 그만큼 몰입했다는 뜻이다. 김동욱은 "그분이 찾아오셨다"는 말로 그 희열을 표현했다.
낯을 가리고 신중한 성격인 그가 자신도 모르게 들뜨면서 표정이 풍부해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연기에 대해 말할 때다. 벌써 데뷔 12년차. 열정과 패기로 가득했던 20대를 지나 30대가 되면서 책임감을 깨닫게 됐다는 김동욱. "아직은 연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웃는 그는 또 다른 색깔들로 채워질 서른의 날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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