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오브 듀티의 빛과 그늘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 참여했던 개발자 대부분이 '모던 워페어2'와 '모던 워페어3' 사이 기간에 인피니티 워드를 떠났다. 공동 설립자인 제이슨 웨스트와 빈스 잠펠라도 회사를 떠났고 리스폰 엔터테인먼트라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EA(!)로 이적했다. 액티비전은 제이슨 웨스트와 빈스 잠펠라가 회사를 떠나는 과정에서 계약 위반과 공금 유용이 있었다며 EA와 소송을 벌였다.
액티비전과 EA의 소송은 합의로 마무리 되었지만 결국 인피니티 워드는 빈 껍데기만 남았다. '모던 워페어3' 개발 과정에서 주요 개발자가 퇴사했고, 액티비전 산하의 다른 스튜디오인 슬래지해머 게임스의 도움을 받아 겨우 게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액티비전과 인피니티 워드는 '이 사태는 모던 워페어3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지만 이 말을 믿는 게이머는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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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오히려 '보조' 역할로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만들던 트레이아크와 슬래지해머 게임스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트레이아크는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2008)로 전쟁의 참화를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고,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2010)에 와서는 음모론을 차용한 반전 있는 스토리와 어두운 분위기로 호평을 받았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2'(2012)에 이르면 '맛이 간 인피니티 워드보다 훨씬 낫다'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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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티 워드가 방황(?)하고 있는 사이, 슬래지해머 게임스가 내놓은 '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2014)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시리즈는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고스트'의 여파 때문에 전체적으로 판매량이 약간 줄긴 했지만, 2014년 북미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만신창이가 된 인피니티 워드가 제자리를 찾을 확률을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메달 오브 아너의 종말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비록 부침을 겪었지만, 여전히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FPS를 연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는 그 명성에 걸맞지 않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2002)'의 대성공 이후 이 게임을 제작했던 2015의 개발자들은 회사를 떠나 인피니티 워드를 설립했다. 게임 연출에 관여하던 스티븐 스필버그도 이 게임에서 손을 뗐다.
EA LA가 시리즈를 계속 개발했지만 구태의연한 방식과 소재를 고수하는 '메달 오브 아너'는 점점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했다. 매 년 콘솔로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가 나왔지만 내리막은 막을 수 없었다. 그나마 심기일전하여 내놓은 '메달 오브 아너: 에어본'(2007)은 몇 달 후 '콜 오브 듀티4: 모던 워페어'가 나오면서 그대로 묻혀버렸다.
EA LA는 절치부심하며 스튜디오 이름을 '데인저 클로즈'로 바꾸고 '메달 오브 아너'도 현대전 배경으로 바꿨다. 그리하여 3년만에 내놓은 '메달 오브 아너'(2010)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네이비씰의 특수전 실화를 각색한 스토리와 짧지만 밀도 있는 게임 진행은 '콜 오브 듀티와는 다른 맛의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발매 후 500만장 이상 판매하며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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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뚜껑을 연 결과물은 형편없는 졸작이었다. 전작의 밀도 있는 스토리 대신 지나치게 커진 스케일로 이야기는 중구난방이 되어버렸고 볼륨조차 작았다.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스토리는 뭘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는 게이머의 혹평이 이어졌다. 멀티플레이도 구태의연한 수준이었고 다양한 버그가 게이머의 앞을 가로막았다. 화난 게이머는 이 게임에 '똥파이터'라는 멸칭을 붙여주었다.
'워파이터'의 실패를 인정한 EA는 2013년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의 중단을 선언하고 개발팀인 데인저 클로즈를 해체했다. 10년 넘게 이어져 온 FPS 브랜드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가 부활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융합과 도전
2000년대 들어서 다양한 FPS가 등장했다. 물론 시장의 주류는 '콜 오브 듀티' 같은 전통적인 FPS지만, 그런 전통적인 FPS의 구도를 벗어난 다양한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RPG 같은 다른 장르의 요소를 FPS에 섞거나 '슈팅' 수준이 아닌 극한의 시뮬레이션으로 가는 FPS도 속속 등장했다.
GSC 게임이 2007년 내놓은 '스토커: 체르노빌의 그림자'(S.T.A.L.K.E.R.: Shadow of Chernobyl)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의 가상 세계를 다루고 있다. 이 게임은 FPS와 RPG가 뒤섞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자신에 대한 단서를 추적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FPS의 일자형 진행이 아닌 다양한 NPC와의 상호작용(퀘스트)이나 세력간 경쟁 등의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게임은 '완전히 색다른 게임이다'라는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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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스 엣지'에서는 총기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게임의 대부분은 건물 사이를 점프, 매달리기 등으로 이동하는 액션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적은 피할 수 있으며, 총이 아닌 격투로 제압할 수 있다. 이 게임은 강렬한 색채의 도시를 1인칭 액션으로 누빈다는데 철저히 초점을 맞춰 큰 호평을 받았다.
어지간한 RPG를 능가하는 강력한 스토리텔링으로 호평을 받은 FPS도 있다. 2K 게임즈가 2007년 내놓은 '바이오쇼크'가 그렇다. 우연히 대서양에 불시착한 주인공이 해저도시 랩처를 탐험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는 이 게임은 FPS 형식에 충실함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스토리텔링으로 찬사를 받았다.
예를 들어 특정 아이템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 주인공이 인간성을 상실하고 추악한 모습으로 변한다거나, 간간히 등장하는 특정 NPC를 채취의 도구로 이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게임의 엔딩이 변한다. 바이오쇼크는 'FPS하면 그냥 적을 쏴 죽이는 게임'이라는 선입견에 정면으로 맞섰다. 이 게임은 그 해 각종 게임상을 휩쓸며 극찬을 받았다.
오늘의 FPS, 미래의 FPS
'울펜슈타인 3D'에서 시작해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장르로 성장한 FPS의 미래는 어떨까? 과거 PC/콘솔 게임의 기술 발달이 RPG와 맞물려 있었다면 오늘날의 게임 기술 발달은 FPS와 맞물려 있다. 새로운 FPS가 등장하면 가장 주목 받는 부분 중 하나가 '어떤 그래픽 기술을 사용했는가'이다. FPS는 단연 최신 그래픽 기술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게임 장르다.
게임 내적인 면에서는 단순히 적을 쏴 죽이는 말초적인 쾌감에서 '하프라이프'나 '바이오쇼크'처럼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왔다. 특히 '1인칭'이라는 시점은 게이머가 게임에 몰입하는 정도가 다른 게임과 다를 수 밖에 없다. 게임의 스토리텔링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1인칭이라는 시점에 많은 주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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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오큘러스 리프트'에 존 카멕이나 밸브 등 유명 FPS 개발자들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이들은 FPS의 강력한 몰입감이 가상현실 기술과 만난다면 이것이 게임의 새로운 전기를 열 것이라고 판단하고 투자하는 것이다. 아직은 가상 현실이 걸음마 단계이지만 본격적으로 게임과 결합한다면 단연 FPS가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이다. 앞으로도 지속될 FPS의 '패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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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어바웃 김경래 기자(www.gameabou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