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장르의 원류를 찾아서. "FPS 혁신 3인방"

이덕규 기자

기사입력 2015-03-05 16:57


누구나 즐기는 FPS 시대를 연 카운터 스트라이크

세기말에 등장한 '하프라이프'와 '레인보우 식스'는 FPS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하프라이프'는 밀도 있는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싱글플레이를 보여주었다. '레인보우 식스'는 밀리터리 FPS에 전략과 전술의 개념을 도입했다. FPS의 진화는 이 정도로 멈추지 않았다. 이제 마니아를 위한 FPS에서 대중을 위한 FPS로 다시 한 번 방향이 바뀌려 하고 있었다.

이 당시 FPS는 여전히 마니아를 위한 장르였다. 멀티가 인기 있던 '퀘이크' 시리즈는 초보가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운 게임이 되어 있었다. '퀘이크' 자체의 게임 템포도 매우 빨랐고, '퀘이크' 마니아의 수준도 상향 평준화 되어 있었다. 로켓점프나 가속점프 같은 '기본적인' 테크닉 없이는 멀티에서 살아남기조차 어려웠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인기를 얻은 '언리얼' 시리즈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1999년 등장한 한 FPS가 이런 상황을 완전히 바꿨다. 당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있던 베트남계 캐나다인 민 리(Minh Le)는 오래 전부터 FPS 게임의 모드(MOD)를 제작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퀘이크'의 툴을 이용해 '네이비 씰'이라는 밀리터리 모드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그러던 와중 '하프라이프'를 접하게 되었고 민 리는 '네이비 씰'의 후속 모드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리는 인터넷 포럼에서 '구즈맨'(Gooseman)이라는 별칭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구즈맨'은 포럼에서 자신의 모딩 작업을 함께 할 동료인 제스 클리프를 만났다. 이들은 테러범과 대테러부대간의 대결을 주 내용으로 한 '하프라이프' 모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구즈맨과 클리프는 밤낮없이 모드를 만들었고 포럼에 베타 버전을 꾸준히 공개하며 서서히 이름을 알려나갔다.
<카운터 스트라이트>
이 모드의 이름은 바로 '카운터 스트라이크' 이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이미 베타버전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처음 베타버전이 나왔을 당시 100명 남짓한 사람들이 즐기던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멀티 서버 목록을 모조리 휩쓸었다. 오리지널 '하프라이프'의 멀티플레이가 묻혀버렸을 정도였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FPS에 관심은 있었지만 정작 멀티플레이는 엄두도 못 내던 사람들이 마침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FPS를 만났다. '퀘이크' 처럼 눈이 돌아갈 정도로 게임 템포가 빠르거나 로켓 점프 같은 화려한 플레이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레인보우 식스' 처럼 하드코어하지도 않았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FPS가 등장한 것이다.

친숙한 소재도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대중화에 한 몫 했다. 대테러전은 일반인에게도 낯설지 않은 소재였다. 게임에는 TV에서 자주 보던 테러리스트와 유명 대테러부대가 등장했다. 등장하는 무기도 대부분 실제 무기들이었다. 맵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철도역, 중미의 피라미드, 이탈리아의 별장지대였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게임 화면>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대박에 '하프라이프'를 만든 밸브도 깜짝 놀랐다. 곧 밸브는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제작자인 민 리와 제스 클리프를 정식으로 영입했다. 모드였던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2000년 PC패키지인 '하프 라이프: 카운터 스트라이크'로 출시됐다. 이것이 흔히 '1.5'로 부르는 버전이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이후 본격적으로 e스포츠 리그까지 만들어지며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인기를 계기로 밸브는 자사의 게임을 편리하게 보급할 수 있는 디지털 유통망을 구상했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언제든지 로그인 해 '하프라이프'나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다운받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이 구상은 이후 '스팀' 플랫폼이 되었다. 대학생이 만든 모드 하나가 FPS는 물론 게임 유통까지 뒤바꿔 놓았다.


MS가 둔 신의 한 수, 헤일로

1999년, '맥 월드 컨퍼런스'에서 당시 애플의 경영 컨설턴트였던 스티브잡스는 맥OS 및 윈도우 플랫폼으로 발매될 신작 게임을 공개했다. RTS '미스'(Myth) 시리즈로 유명한 번지 소프트가 만든 이 게임은 '미스'의 공상과학 버전이었다. '헤일로'의 초기버전은 3D 액션과 전략이 혼합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였다.


<헤일로의 초기 버전 스크린샷>
놀랍게도 이듬해 마이크로소프트가 번지를 전격적으로 인수했다. 사실 번지는 '미스2' 설치 프로그램에 발생한 치명적인 버그와 리콜 소동으로 대규모의 손실을 입었다. 이 때문에 경영난에 시달리던 번지는 애플과 MS에 각각 자신들을 인수해 줄 것을 제의했고 애플이 망설이던 사이 MS가 발 빠르게 인수했다.

'맥 월드 컨퍼런스'에서 '헤일로'가 맥으로 출시될 것이라 약속했던 스티브 잡스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이미 MS는 애플을 견제하고 있었고, 번지를 MS가 인수한 이상 '헤일로'가 순순히 맥으로 나올리는 만무했다. 결국 닭 쫓던 개가 되어 버린 스티브 잡스는 길길이 날뛰었다. 이후 '헤일로'는 엑스박스 플랫폼으로 먼저 나왔다. 성화에 못 이겨 뒤늦게 맥 버전으로 나오긴 했지만 이미 기차는 떠난 뒤였다.

MS가 번지 소프트를 발 빠르게 인수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MS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FPS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당시 미국 사람들의 PC에 '윈도우'나 '도스'보다 더 많이 깔린 소프트웨어가 '둠'이었다는 사실에 MS는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둠'의 유명세를 자사의 OS인 '윈도우' 홍보에 쓰기 위해 이드 소프트웨어의 인수까지 생각했다.

MS의 '둠' 인수 시도 자체는 불발로 끝났다. 하지만 MS는 '윈도우95' 홍보를 위해 '둠'의 윈도우 이식에 많은 지원을 해 주었다. MS 내부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둠'을 즐겼다. '둠'과 FPS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일부 개발자는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MS를 퇴사하고 FPS 개발에 직접 뛰어들기도 했다. 앞서 소개한 밸브의 '게이브 뉴웰'도 그렇게 MS를 뛰쳐나온 개발자 중 하나였다.

그렇게 FPS에 눈독을 들이던 MS에게 번지의 인수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과감하게 번지를 인수한 MS는 '헤일로'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MS는 당시 차세대 콘솔인 '엑스박스'(Xbox)의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콘솔 사업에 처음 뛰어드는 만큼 'MS가 만드는 콘솔'의 특색을 강조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얼굴마담으로 나선 것이 '헤일로'였다. MS는 북미에서 '콘솔 FPS'의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헤일로: 전쟁의 서막>
드디어 2001년 '엑스박스'의 런칭과 더불어 '헤일로: 전쟁의 서막'(HALO: Combat Evolved)이 등장했다. '헤일로'의 등장은 전 세계 게임업계를 놀라게 했다. 게임언론은 '헤일로'를 두고 "빠른 템포와 스토리를 모두 잡은 훌륭한 게임이다", "이 게임 하나만으로도 엑스박스를 살 가치가 있다"라며 극찬했다.

PC에서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FPS를 대중화시키는데 성공했다면, 콘솔에서는 '헤일로'가 그 역할을 맡았다. 아직까지 'FPS는 역시 PC에서 즐기는 것이다'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헤일로'는 그 편견을 깨고 게임패드를 이용한 FPS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화끈한 진동 기능이 있는 게임패드는 키보드&마우스와는 또 다른 손맛을 보여주었다.

MS의 예상은 옳았다. 콘솔 FPS의 가능성은 개발자가 상상하는 이사이었다. '헤일로'는 날개 돋친 듯 팔리며 5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헤일로'는 엑스박스를 살린 불멸의 게임으로 남았다.

'헤일로'의 주인공인 마스터 치프의 남자다운 매력과 검은 색 '엑스박스'의 탄탄한 모습은 게이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MS가 무슨 게임기 사업을 하냐며 비아냥대던 목소리도 쑥 들어갔다. 비록 '플레이스테이션2'에는 패배했지만 'MS가 만드는 게임기는 FPS 장르가 강하다'라는 인상을 심어주는데 성공했다. 이 중심에 '헤일로'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장 그 자체,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

같은 해 FPS 시장에는 또 하나의 쓰나미가 엄습했다. 1999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발매된 '메달 오브 아너'를 보고 일렉트로닉 아츠(EA)는 한 눈에 반했다. 이듬해 EA는 '메달 오브 아너'를 제작한 드림웍스 인터렉티브를 거액에 인수했다. PC게임 유통에도 잔뼈가 굵었던 EA는 '메달 오브 아너'를 PC용으로 발매하고 싶었다. 막 인수한 드림웍스 인터렉티브는 인수의 후폭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EA는 2015라는 작은 회사에 '메달 오브 아너'의 PC판 제작을 맡겼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이들은 결국 역사에 영원히 남을 위대한 게임을 만들어 냈다.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 다. 2015의 개발자들은 콘솔 성능의 한계에서 벗어나 고사양 PC를 기준으로 다양한 전장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었다.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
2002년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의 등장은 전 세계 게이머에게 충격을 주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연출이 FPS 게임에 그대로 들어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스토리와 연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였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본 그 오마하 해변이 게임 안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상륙주정에 포탄이 명중해 아군의 육신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연출은 게이머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독일군 장교의 복장과 신분증을 훔쳐 잠수함 기지에 침입하는 미션은 게이머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얼라이드 어썰트'는 쏘고 부수는 FPS를 넘어서 게임에 훌륭한 연출이 접목되면 한 편의 영화를 뛰어넘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얼라이드 어썰트의 노르망디 상륙장전. 미션병 모두가 전율했다.>
드디어 FPS 장르는 활짝 꽃피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더 많은 게이머가 FPS를 즐길 수 있도록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헤일로'는 콘솔 게임기에서도 FPS가 엄청난 가치를 지님을 증명했다.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는 전쟁을 제대로 묘사한 밀리터리 FPS의 성공 가능성을 제시했다.

활짝 꽃 핀 FPS 장르에 더 많은 도전자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초고속 인터넷망의 보급과 PC기술의 발달은 더 많은 FPS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21세기 FPS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콜 오브 듀티', '파 크라이', '하프라이프2', '배틀필드' 시리즈 등등 수많은 FPS '영웅'이 무림에 속속 등장할 차례였다.

[게임어바웃 김경래 www.gameabou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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