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에로틱칵테일] 때로는 여자에게 용기가 필요하다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1-12-11 16:57


사실 그와의 첫 섹스가 좋았냐, 라고 묻는다면 딱히 그렇다고 대답할 순 없다. 나는 술에 취하면 몸이 둔감해지는 안 좋은 체질을 갖고 있는 데다가 그날 나와 벗은 몸으로 한 침대에 누워 있는 그 남자 곁에서 머리만 복잡했다. 내가 잘한 행동일까, 이래도 됐던 것일까,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래서 한 번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약속 있다는 핑계로 그를 보내고 말았다.

그가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은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종종 마주치는 눈빛이나 뜬금없이 안부를 묻는 문자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내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것도 그랬다. 어지간하면 주변에서 "그 남자가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아"라고 먼저 말해주었으랴. 나에게도 그는 썩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다. 성실하고 착한 성품도 그랬고,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도 믿음직스러웠다. 가볍지 않으면서 두루 사람들과 사이좋은 그 남자라면 진득하게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참한 남자'를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끝이라는 것이었다. 단 둘이 영화를 보자거나 술을 한 잔 더 하자거나 집에 바래다준다거나…… 더 이상의 발전이 없었다. 도대체 나이가 들수록 남자들은 왜 이렇게 남자다움을 잃어가는 것일까. 스무 살 때처럼 "네가 좋아, 사귀자" 남들 앞에서 프러포즈하는 패기며, 여자의 집 앞에서 밤새 기다리는 열정, 길거리에서 기습 키스 하는 용기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삼십대를 훌쩍 넘기면서 남자들은 급속도로 소심해진다. 몇 번 문자나 카톡을 보냈다가 여자에게 별다른 반응이 없으면 "내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며 금세 포기해버린다. 물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몇 번 연애에 실패하면서 그들은 그런 열정과 패기, 용기만으로 사랑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또 깨달았을 것이다. 그들은 위축되었을 테고, 큰 기대 이후에 더 큰 실망감과 좌절감이 남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여자들이 상처받기 싫은 것처럼 그들도 똑같이 마음을 여는 게 두려울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집에 가려는 그의 팔을 끌어당겨 먼저 키스를 한 건. 주춤거리는 그의 입술은 이내 부드럽게 반응해왔고 그렇게 우리는 하룻밤을 보냈다.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그 남자는 사랑에 빠졌다! 매일 밤 한 시간이 넘도록 통화를 하고 난 뒤에도 몇 분 뒤 보고 싶다고 다시 전화 걸어오는 남자, 아침이면 제일 먼저 잘 잤냐고 물어오는 남자, 목소리만 들어도 설렌다고 뛰어오는 남자, 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마주 앉은 손을 꼭 잡아오는 남자, 애인이 생겼다고 친구들에게 당장 자랑하는 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남자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그에게 물었다. "내가 그날 그렇게 덮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그냥 '아는 여자' '아는 남자'가 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런 사이가 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나에게도 남자에게 먼저 키스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여하튼 사랑은 좋은 거니까. 결국에 내볼 만한 용기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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