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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도 없다는 사랑이 과연 휴전선을 넘을 수 있을까?'
이 작품의 기본 설정과 이야기 구조를 보면서 과거 몇몇 실패작들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2002년 개봉한 영화 '휘파람 공주'는 평양예술단의 수석무용수로 공연을 위해 남한에 온 김정일의 막내딸(김현수)과 무명 록밴드 리더(지성)의 로맨스를, 2003년 개봉한 '남남북녀'는 고구려 고분발굴단에 참여한 남한의 작업남(조인성)과 북한의 엘리트 여대생(김사랑)의 로맨스를 그렸다. 두 작품 모두 당시 가장 뜨겁게 떠올랐던 청춘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이젠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하다. 남파 여간첩이 등장하는 '그녀를 모르면 간첩' 역시 마찬가지. 패스트푸드점에 위장취업한 여간첩(김정화)이 인터넷 얼짱으로 등극하고 삼수생(공유)과 좌충우돌하며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2004년 당시 큰 화제가 됐던 '인터넷 얼짱'과 남북 문제를 버무렸지만, 흥행 성적은 참혹했다.
이처럼 남북 문제라는 외피를 쓰고 '남남북녀'의 달달한 로맨스를 그려냈던 작품 치고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경우가 거의 없다. 무거운 소재와 가벼운 장르의 불협화음 때문이다.
제작진과 주연배우들 또한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지난 5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황인혁 PD는 "소재만을 가지고 한쪽으로 기울거나 소재 자체로 흥미를 끌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남북한 이념 문제보다는 선남선녀의 로맨스로 봐달라"며 "이념을 깊게 파고드는 것도 좋겠지만 개인사와 코미디로 푸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연배우 한예슬도 "다른 삶을 살아온 남녀의 이야기"라고 설명했고, 이진욱은 "한없이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이지만 극적 허용이라는 선에서 로맨틱 코미디로 풀었다"고 말했다.
소재와 장르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스파이 명월'이 풀어야 할 숙제다. 정통 의학드라마를 표방한다면서 결국엔 병원에서 남녀가 연애하는 이야기를 그리는 것처럼, '스파이 명월'도 분단이라는 껍데기만 뒤집어 쓴 그렇고 그런 연애 드라마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 균형 맞추기가 꽤나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드라마가 간판에 걸어놓은 '한국형 첩보 멜로'라는 말이 이를 증명한다. 남북 문제라는 말 대신 내걸린 '한국형 첩보'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그리고 '첩보'와 '멜로' 중 무엇에 방점이 찍혀 있는지, 어느 하나 분명한 게 없다. 이것이 '스파이 명월'의 태생적 한계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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