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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시네마 리뷰] '인 어 베러 월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감내해야 할 것들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1-06-22 09:49 | 최종수정 2011-06-22 15:49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한 고대 법전에 적혀있다는 이 문구는 어린 시절 복잡한 상황을 단칼에 해결해주는 든든한 지침서 같았다. 나를 한 대 쳤던 친구가 있다면 나 역시 한 대 때려주는 것이 응당한 댓가였고, 잘못이 있으면 체벌이 가해지는 것도 당연한 순리였다. 하지만 실상 간단한 규범 하나로 해결되는 문제라는 것이 어디 많은가. 나이가 들면서 겪는 세상사 복잡한 일들은 칼로 무 자르듯 쉽게 판단되기 어려웠다. 수많은 이해관계들과 가치들이 맞물려, 명쾌하게 해결되기 어려운 난제들로 얽힌 곳이 삶이고 또 이 사회였다.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빛나는 수잔 비에르 감독의 '인 어 베러 월드'는 이 같은 삶의 복잡성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일상에서 접하는 딜레마적 상황과 거시적 사회구조가 서로 맞물리면서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영화는 크게 세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의사 안톤과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어린 아들 엘리아스, 그리고 엘리아스의 친구 크리스티안이 그들이다.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엘리아스를 크리스티안이 구해주면서 이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사사로운 시비로 인해 엘리아스의 아버지 안톤이 다른 남성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게 된다. 이를 목격한 두 소년은 이유도 없이 아버지 안톤이 당했다는 사실에서 굉장한 충격을 받고 분노에 휩싸인다. 하지만 안톤은 둘에게 잘못된 폭력에 대해 똑같은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대응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가르친다.

정당하지 못한 폭력에 대응하는 것을 두고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방치하는 것과 이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응징하는 것. 무엇이 더 합당하고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오랜 인류 역사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됐던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부자 사이에 급작스레 발생한 미시적 갈등이 안톤이 봉사하는 아프리카로 배경을 옮기며 더 큰 사회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유사 갈등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죄 없는 이들을 학살하던 부족의 대장이 응급처치를 위해 안톤에게 다가왔을 때, 주변 부족민들은 대장을 살려선 안된다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모든 생명의 존엄함을 중시하는 의사로서의 소명은 이 같은 결정을 어렵게 한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학살자의 목숨 역시 존중받아야하는가 혹은 그가 행한 죄의 무게만큼 그대로 되갚아줘야 하는가라는 현실적 질문이 관객에게 던져졌을 때 누구도 이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안톤이 억울한 폭력을 당한 것에 대해 앙갚음하고 싶었던 엘리아스와 친구 크리스티안은 결국 가해자의 차를 폭파시키기로 마음먹는다. 이들이 화약을 만들고 폭발되는 순간을 기다릴 때, 운명은 안타깝게도 그 앞에 무고한 생명을 앞세운다. 엘리아스는 결국 자기 몸을 내던져 다른 사람의 희생을 막고, 어머니를 잃고 좌절감에 빠져있던 크리스티안은 아버지와 화해하게 된다. 악랄한 폭력에 앙갚음하려던 폭력이 또 다른 폭력으로 타인에게 가해지는 상황과 미처 이를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순수한 분노는 현실세계의 갈등들을 되짚어보게 한다. 악에 대한 응징 혹은 정당한 복수라는 미명 아래 저질러지는 살육과 학살, 전쟁은 신문에서든 뉴스에서든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어쩌면 복잡한 사건들을 통해 끝없는 질문을 낳는 이 영화의 고단한 과정이야말로 우리의 현실이 '베러 월드(더 나은 세상)'가 되기 위해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손쉽게 해결되지 않는 가치 싸움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미진 청룡시네마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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