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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현의 영화&의학-모비딕] 서태지와 이지아의 결혼과 이혼 소송 소식이 알려지면서 서태지의 팬들은 패닉에 빠졌었습니다. 일반 국민들도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치권의 비리를 덮기 위한 음모라는 소문이 온라인을 타고 빠르게 퍼지기도 했었지요. 음모에 관한 소문은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서부터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에까지, 예를 들자면 손꼽을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다는 음모론, 잊을만하면 어디선가 독버섯처럼 돋아납니다.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사건을 모티브로 한 <모비딕>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강원도의 한 다리가 폭파되고, 간첩의 테러로 언론에 알려집니다. 하지만 배후조직의 요원 한 명이 조직을 탈출, 이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와 접촉하면서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기자 세 명의 힘만으로 거대한 권력조직과 맞서는 것은 어렵습니다. 정부 위의 정부, 권력과 맞서는 기자의 활약을 그린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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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아쉬운 점은 <모비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배후권력에 대한 묘사가 조금 어설프다는 것입니다. 드라마 < X파일> 같이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비밀스러움도 없고, 조직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카리스마도 없습니다. 특히 조직의 핵심이 모여 회식하는 장면은 조금 더 고려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흔히 보는 조폭 같은 모습 같다고나 할까요?
영화 속에서 사회부 이방우 기자(황정민)은 조직에 납치되어 위기를 맞는 장면이 있습니다. 머리에 비닐봉지를 덮어 쓰고 위협을 받는데요, 호흡이 가빠지고 공포에 빠지게 되는 장면입니다. 사람의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얼굴을 가려 보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공포는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 경우에 더욱 극대화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공포를 주기 위해 얼굴에 씌웠던 그 비닐봉지가 사람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머리에 봉투를 뒤집어쓰는 장난을 한 번쯤은 해보신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숨 쉴 수 있는 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흡이 상당히 곤란해질 수 있는데요. 공기가 지나는 통로의 저항이 높아져 공기를 들이 마시고 내쉬는데 힘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물에 빠졌을 때와 같이 극심한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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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반대로 공황 발작이 일어나서 과호흡에 의한 호흡 곤란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얕은 호흡을 빨리하게 되면 체내의 이산화탄소가 과도하게 빠져나가게 됩니다. 이 경우 신체는 알칼리로 변화되어 경련, 의식 저하, 심할 경우 무호흡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심한 과호흡에 의한 호흡 곤란이 있는 경우에는 환자를 살리는 응급처치로 비닐 혹은 종이 봉투를 씌우게 됩니다. 자기가 내쉰 이산화탄소를 다시 들이마시게 해서 낮아진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높이는 원리이지요. 드라마틱하게도 곧 숨이 넘어 갈듯하던 환자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편안한 상태로 회복됩니다. 주의할 점은 완전히 밀폐시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질식할 수 있으니까요.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틈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응급 처치법은 일반 시민들이 알아 두셔도 좋을 의학 상식입니다.
조그만 봉지 하나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극심한 공포에 빠질 수도, 공포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들을 조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주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찬가지, 영화도 미세한 장면 하나 하나에 의해 영화 전체의 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디테일 하나까지 완벽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힘든 일이나 명작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됩니다. <임재현, 서울 나누리병원 원장 blog.naver.com/nanoori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