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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시작되는 프로농구 2011∼2012시즌 내내 빨간 양복을 두고 구단측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여야 할 판이다.
사연은 이렇다. KT 구단의 권사일 단장은 최근 전 감독을 위해 빨간색 양복을 맞췄다. 빨간색에 딱 어울리도록 넥타이 색깔은 노란색이다.
권 단장이 이런 의상을 준비한 이유는 명백하다. 이제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농구를 위해서라면 감독도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권 단장은 "감독들이 틀에 박힌 듯이 상갓집에서도 볼 수 있는 검은색 계열 양복을 입고 코트에 나서니까 재미가 없다"면서 "복장에 대해서도 시대 흐름에 맞춰 과감해질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그래서 올시즌 중에는 어떤 빌미를 만들어서라도 전 감독에게 한 번 입혀 볼 작정이란다.
하지만 전 감독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명확한 2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후배 감독들에게 선례를 남기면 안된다는 것이다.
전 감독은 프로농구판에서 어느새 김 진 LG 감독(50) 다음으로 고참이다. 유재학(모비스), 추일승(오리온스) 감독과 동갑이고 나머지는 모두 새파란 후배들이다.
전 감독은 "고참 감독으로서 내가 잘못 물꼬를 터 놓으면 후배들이 나를 얼마나 원망하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전 감독은 절친 유재학 감독을 두려워 한다.
언젠가 사적인 모임때 이른바 백바지에 백구두로 제법 멋을 좀 부리고 나갔는데 보수적인 유 감독이 기겁을 하며 핀잔을 주더라는 것이다.
전 감독은 "내가 빨간 양복을 입으면 유 감독이 무슨 소릴 할지 안들어도 뻔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두 번째 이유는 코트에서의 예의를 중시하기 위해 정장 드레스코드를 고집하는 농구계의 전통을 한 번에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농구는 몸싸움이 심한 만큼 예의범절을 몹시 중요시 한다.
그래서 감독의 상체 복장을 터틀넥 니트류나 와이셔츠로 규정하기도 한다. 사실 고지식한 편인 전 감독은 농구계의 이런 전통을 깨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KT 구단의 빨간 양복 소동은 어찌보면 전 감독이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 단장은 지난해 일본으로 전지훈련에 따라갔다가 일본 BJ리그 OSG의 나카무라 감독을 봤다. 일본에서 명장으로 알려진 나카무라 감독은 68세의 나이에도 형형색색의 양복을 입고 코트에 나와 독특한 화제를 뿌리는 인물이었다. 권 단장은 그 감독을 보는 순간 "바로 이거다"라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나카무라 감독은 전 감독이 평소에도 잘 알고 지내는 농구게 원로다. 그 인연으로 OSG와의 연습경기를 추진했다가 권 단장에게 엉뚱한 관전 포인트만 안겨준 것이다.
"복장이 아니라 화끈한 농구로 재미를 선사하겠다"는 전 감독과 "전 감독 같은 사람이 입어야 농구 흥행이 된다"는 구단의 실랑이는 시즌 개막과 함께 본격화될 전망이다.
구단측은 전 감독이 정 힘들다면 조성민의 머리를 형광색이나 빨간색으로 염색시키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래저래 올시즌 KT는 볼거리 몇 개 늘어나게 생겼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