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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조선 정재근 기자] 푸른 그라운드가 너무 좋아서, 저녁 식비와 교통비 정도는 내가 벌어 보자는 다짐. 그렇게 잠실야구장 볼보이가 된 고교야구 2학년 투수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27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 SSG 랜더스와의 주말 3연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두산 베어스 선수들의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 낯선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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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을 주축으로 내년 시즌을 준비하기에 앞서 부천고 야구부 선수들에게 짧은 휴가가 주어졌다. 한창 놀고 싶은 나이에 얻은 꿀맛 같은 자유시간, 그런데 김지윤 군은 주저 없이 잠실야구장 볼보이를 지원했다.
김 군은 "야구장 그라운드에 있는 게 너무 좋아요. 그리고 야구부 활동에 들어가는 저녁 식비와 교통비 정도는 내가 벌어보자는 생각에 부모님께 허락받고 볼보이를 지원하게 됐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두산과 LG가 함께 쓰는 잠실야구장에는 30명의 정식 볼보이가 활약하고 있다. 매일 훈련 볼보이 2명과 경기 볼보이 6명이 필요하다. 30명 중 그날 스케줄에 맞는 사람이 현장에 투입되는 방식이다. 지난주에 처음 볼보이로 나온 김 군은 아직 30명의 정식 풀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자리가 비었을 때 투입되는 일종의 수습 요원 신분이다. 경력이 쌓여야 정식 풀에 포함될 수 있다.
볼보이 지원 후 김 군은 두 번 경기 볼보이로 투입됐다. 그런데, 두 번째 날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저녁 6시 경기 볼보이로 나갈 경우 두 시간 전에 경기장에 오면 되지만, 김 군이 출근한 시각은 낮 12시. 곧바로 그라운드에 나가자 두산 허경민 김재환 강승호가 일찍부터 출근해 훈련 중이었다.
김 군의 깍듯한 인사에 세 선수가 동시에 "야구부냐?"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고교야구 선수가 쉬는 날에 일하러 온 게 기특했을까? 허경민은 자기 글러브를 김 군에게 건네며 함께 훈련하자고 제안했다.
놀라운 경험은 계속 이어졌다. 김 군이 김재환과 캐치볼을 하는 사이 권명철 투수코치가 다가왔다. 그러자 허경민이 "제가 좋은 투수 한 명 데려왔습니다"라며 김 군을 소개했다. 권명철 코치는 김 군에게 공을 던져보라고 한 후 그 자리에서 원포인트레슨까지 해줬다고. 그리곤 김 군을 데려가 두산 투수들과 함께 캐치볼을 하게 했다.
끝이 아니다. 투수조 훈련이 끝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던 최원준이 펜스 그늘에 앉아 땡볕을 피하고 있던 김 군을 보더니 "따라와"라며 이끌었다. 최원준이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라커룸'. 더위 좀 식히라는 최원준의 배려, 감동이었다. 라커룸을 구경하고 나오던 김 군이 이번엔 실내연습장에서 수건을 들고 섀도 피칭을 하는 김동주와 시선이 마주쳤다. 까까머리 소년의 씩씩한 인사에 김동주가 한 말. "같이 훈련할래?"
잊을 수 없었던 이날의 경험. 27일(일요일)은 빈자리가 없어서 볼보이를 할 수 없어지만, 김 군은 또 야구장에 왔다.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하고, 훈련 지켜보고, 함께 던지고,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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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과 '최선'을 말한 김 군의 꿈은 '영구결번'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의 희망은 30명 정원의 잠실구장 정식 볼보이 요원에 포함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