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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LA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가 고교 시절 작성했다는 인생 계획표를 보면 무척 구체적이고 예언가적 기질도 엿보인다.
또 눈에 들어온 계획은 40세에 은퇴하되 마지막 경기에서 노히터를 달성하겠다는 것. 오타니가 40세가 되는 시즌은 2034년이다. 무엇보다 그때까지 투타 겸업을 하겠다는 포부가 놀랍다. 물론 그 나이에 타자를 포기하고 투수로만 활약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성격상 투수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오타니는 은퇴할 때까지 투타 겸업을 유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타자 혹은 투수, 하나만 하는 여느 선수들보다 두 배의 노력과 체력이 필요할텐데, 40세까지 투타 겸업이 가능할까. 의학과 트레이닝 이론을 굳이 따르지 않더라도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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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타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918년 즈음이다. 4~5일에 한 번 선발등판하고 대타로 가끔 타석에 서는 게 연봉 측면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하던 터에 제1차 세계대전으로 빅리거들이 대거 군입대하면서 선수 부족 사태가 생기자 주전 타자로의 전향을 꿈꾸게 된다.
당시 에드 배로우 보스턴 감독은 루스의 타자 전향을 망설이다가 외야수 해리 후퍼의 강력한 권유를 받고 투수로 나서지 않는 날 루스를 외야수 또는 1루수로 기용했다. 주전 야수로도 활동폭을 넓힌 루스는 그해 투수로 13승7패, 타자로는 11홈런을 치며 생애 첫 홈런왕에 올랐다.
타격 재미에 푹 빠진 루스는 1919년 투수로는 9승5패에 그쳤지만 타자로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어 29홈런을 터뜨리며 전국구 홈런타자로 이름을 알렸다.
거포 변신에 성공한 루스는 1920년 10만달러의 현금 트레이드로 뉴욕 양키스로 옮기면서 날개를 달았다. "타자에 전념하라"는 밀러 허긴스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라이브볼 시대의 개막과 함께 54홈런을 날리며 전설의 행보를 시작했다.
루스는 오타니처럼 체력 걱정을 해야 할 만큼 투타 양쪽에서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명타자가 없던 시절 투타 겸업은 특별하지도 않았고 2배의 연봉을 받았던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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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가 훗날 투타 둘 중 하나를 포기한다면, 그건 체력적인 문제 때문일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올해 말 FA 시장에서 오타니를 영입하고 싶어하는 구단들이 투타 가치를 따로 매겨 몸값을 계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상 계약기간은 최소 10년이다. 그가 은퇴할 때까지 투타 겸업을 유지할 것이라는 낙관론인데, 하나를 포기할 '사태'에 대비해 관련 조항을 따로 작성할 지는 모를 일이다.
ESPN은 최근 오타니의 FA 계약 규모를 전망하면서 11년 6억2400만달러가 적정치라고 주장했다. 오타니가 타자로는 트레이 터너(11년 3억달러), 투수로는 게릿 콜(9년 3억2400만달러)과 각각 활약상이 비슷하다는 걸 근거로 들었다. 이게 과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더욱 흥미롭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