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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삼성 라이온즈는 행복한 구단이다.
포스트 팬데믹 이후 첫 개막 2연전. 첫날인 1일 2만4000만명으로 5개 구장 중 최다관중. 둘째날인 2일에도 1만8483명의 구름 관중이 운집해 따뜻한 봄날의 일요일 오후를 만끽했다.
놀라운 일이다. 삼성은 겨우내 가장 조용한 스토브리그를 보낸 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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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캠프 때는 1군 캠프와 지척인 2군 캠프지를 일본 오키나와에 차리며 1,2군 교류를 활성화 시켰다.
2군으로 출발한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됐음은 물론이다. 실제 김동엽 이성규 같은 선수들이 2군 캠프로 출발해 1군에 합류하며 개막 엔트리 승선에 성공했다. 백업을 넘어 주전으로 도약할 기세다. 이호성 김재상 같은 루키들도 2군 캠프에서 출발해 1군 캠프에 승선하며 폭풍 성장 중이다.
박진만 감독은 오키나와 마무리 캠프 부터 강도 높은 훈련으로 선수들을 담금질 하며 구단의 배려에 화답했다. "가장 컨디션 좋은 선수가 뛴다"는 원칙을 세우면서 윈 나우 기조를 분명히 했다. 고참 후배도, 주전 비주전이 없는 무한 경쟁 체제. 매 순간 건강한 긴장감이 선수단을 감싸고 있다. 가진 자원이 충분치 않은 삼성 선수단이 전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시범경기를 거치면서 삼성 야구에 대한 기대감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개막에 대한 기대가 부푼 시점. 화창한 봄날, '거대한 놀이터'로 변한 라이온즈파크 좌석 예매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지난달 25일 티켓 예매 부스가 열리기 무섭게 15분 만에 매진되고 말았다.
1일 개막전 0대8 완패는 144경기 중 1경기 패배였을 뿐이지만, 라팍을 가득 메운 팬들 때문에 많이 미안해 해야 했다.
선수단 표정이 굳었다. 박진만 감독은 2일 NC전을 앞두고 코칭스태프 미팅에서 "우리라도 얼굴 표정 밝게 하고 파이팅 하자"고 당부했다. 선수들에게 전해졌음은 물론이다.
이날 삼성은 믿었던 수아레즈가 무너지면서 0-6으로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이날도 2만 명 가까이 운집한 팬들 앞에서 또 한번 무기력 하게 물러날 수는 없었다.
5회 동점 스리런 홈런으로 역전승을 이끈 4번 포수 강민호는 "초반에 점수 차가 벌어지면서 오늘도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많이 와주신 관중 앞에서 포기를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런 마음이 선수들 사이에 공유됐고, 끝내 드라마 같은 역전이 완성됐다. 여세를 몰아 4일 대구 한화전에서도 7대6 역전승을 완성하며 연승을 달렸다. 특히 투혼의 상징 피렐라가 결승 홈런과 함께 9회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고 구급차에 실려가면서 선수단 사이에 투지가 강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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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새 캐치프레이즈는 'Win or Wow'다. 이기든가, 감동을 주자는 의미다. 매 순간 팬들을 향한 지향성이 내포돼 있다. 프로페셔널로선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한 일이 때론 가장 어려운 법이다.
이기고 지는 것에만 매몰되다 보면 본질을 놓칠 수 있다.
프로 스포츠는 환상을 파는 장터다.
그라운드와 관중석으로 구분된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경계선 사이에서 팬들은 자신의 좋아하는 선수들에게 환상을 품고 이를 향해 열광한다.
공인 여부를 떠나 선수들은 자신들의 고객인 팬들의 이러한 환상을 소중하게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 경기장 안에서는 프로다운 감동적인 경기를 보여주고, 경기장 밖에서는 일탈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구 개막 2연전에는 서울에서 대구까지 유니폼 차림으로 원정 응원을 온 팬들도 많았다. KTX 거점인 동대구역이 야구 팬들로 북적였다.
첫 경기는 이기지도, 감동을 주지도 못했다. 윈도 와우도 아니었다. 하지만 두번째 경기는 짜릿하게 이겼고, 벅찬 감동도 안겼다. 윈과 와우를 동시에 잡은 경기.
이기고 지는 건 모두에게 중요하다. 하지만 승패란 결과는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과정 만큼은 달라질 수 있다. 그 과정의 변화를 위해 크게 날숨 한번 내쉬고 힘이 닿는 대로 한걸음 더 뛰어야 한다.
팬들이 원하는 'Wow'는 결코 먼 곳에 있는 구호 뿐인 신기루가 아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