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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메이저리그에도 선수 출신 사장, 단장(general manager)이 더러 있다.
2017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은 영은 곧바로 행정가로 변신했다. MLB 사무국의 필드운영, 선도 및 전략 부문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된 것이다. 2020년 2월에는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해 벌금과 출전정지와 같은 징계를 내리는 일과 온필드 운영 및 심판 관리를 맡았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피치 클락이나 시프트 금지와 같은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규정을 다루는 핵심 부서의 수장이었다.
행정가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그는 2020년 12월 친정 텍사스 구단의 부름을 받고 단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전임 존 다니엘스 단장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프린스턴대 재학 시절 농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지만, 2000년 드래프트에 참가해 3라운드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지명을 받고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01년 마이너리그를 시작한 뒤 정치학 논문을 써 학사 학위를 받은 점이 이채롭다. 그가 쓴 논문 제목은 '재키 로빈슨의 삶이 인종적 고정관념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2004년 텍사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영은 2005년 12승, 2006년 샌디에이고에서 11승을 올린 그는 20대 시절 유망한 선발투수로 각광받았다. 이후 뉴욕 메츠, 시애틀,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거쳐 2017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는다. 통산 79승67패, 평균자책점 3.95로 꽤 눈에 띄는 기록을 남겼다.
영 단장의 수완은 지난 오프시즌 두각을 나타냈다. 스승이나 다름없는 3차례 월드시리즈 우승 사령탑 브루스 보치 감독을 설득해 지휘봉을 맡겼고, 현존 최강 에이스 제이콥 디그롬을 5년 1억8500만달러에 데려왔다. 네이선 이오발디, 앤드류히니, 마틴 페레즈 등 정상급 FA 선발투수를 확보한 텍사스는 올시즌 가을야구를 꿈꾸고 있다.
풍부한 현장 경험과 명석한 두뇌, 그리고 신뢰받는 인간적 품성이 영을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았다고 보면 된다. 메이저리그 사장, 단장이 선수 계약과 관련해 잡음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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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전 단장은 선수 출신이다. 1996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 2003년 KIA에서 은퇴했다. 통산 580경기에 출전해 타율 0.215, 7홈런, 75타점을 기록했다. 선수 시절 유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은퇴 후 현대에서 기록원으로 제2의 인생을 내디디며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는 히어로즈에서 1군 매니저와 운영팀장을 거쳐 2016년 감독으로 발탁됐다. 2019년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성과도 냈다. 히어로즈를 떠난 뒤에는 해설위원을 역임한 뒤 2021년 11월 KIA 단장에 선임됐다. 선수-감독-단장을 거친 인물은 KBO 역사상 5명 뿐이다.
KBO리그에서 단장의 역할은 메이저리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선수단 실무 최고 책임자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고연봉 '샐러리맨'이다. 구단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다. 구단이 선수 출신 단장을 앉히는 것은 현장서 쌓은 경험과 감각을 통해 효율적으로 선수단을 꾸려보라는 취지다. 행정 경력만 가진 인사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 크리스 영 단장이 대표적이다.
장 전 단장의 감독 시절 능력과 감각을 의심하는 사람을 못 봤다. 장 전 단장은 박동원과는 선후배, 사제지간으로 오랜 시간 인연을 쌓아왔을 것이다. 농담처럼 건넸다는 '그 말'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은 실수나 안일함으로 치부하기엔 사안이 심각하다.
영 단장은 5년 전 단장 취임식에서 "댈러스 출신인 나에게 이것은 매우 특별한 기회이며 레인저스가 이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갖는지를 잘 안다. 많이 배우겠다"고 했다.
장 전 단장도 2021년 11월 취임 소감으로 "프런트의 역할이 눈에 안 띄고 현장의 감독과 코치진, 선수들이 잘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것이라고 본다. 명문팀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잘 하겠다"고 밝혔다. 서포트와 명성, 누(累)를 언급했다.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