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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일본)=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굉장했다. 일본 대표팀에는 좋은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정말 많았다. 처음에는 감탄했고, 그 다음에는 놀랐고, 그 다음에는 좌절감이 들었다. 우리는 왜 저런 투수가 없을까. 아마 그들을 직접 상대한 대표팀이 느낀 기분은 더 절망스러웠을 것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10년 사이에 몇 단계 업그레이드 된 일본 대표팀이었다. 일본에는 좋은 투수들이 정말 많았다. 오타니 쇼헤이가 워낙 대단한 관심을 받고 있지만, 그 외에도 정교한 제구에 빠른 구속, 볼 끝의 힘까지 가지고 있는 투수들이 3명, 4명, 5명씩 나왔다. 예전에는 변화구 구사에 의존하는 일본 투수들에 대해 "손장난이나 한다"는 비하도 있었지만, 지금 그들이 던지는 공을 보면 그런 소리가 절대 나오지 않는다. '무려' 4선발로 나온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왜 일본 최고의 투수인지 국제 무대에서 보여줬다. 그의 나이는 만 25세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보니 답답한 마음까지 들었다. 피지컬은 기본적으로 한국 선수들이 더 좋다. 이제는 일본에도 오타니, 사사키 로키처럼 키 1m90이 넘는 거구 선수들이 여럿이지만, 그들 몇몇을 제외하면 키나 체격이 한국 선수들에 비해 적은 편이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단신 마무리로 꼽히는 고우석도 1m70대 후반의 신장에 탄탄한 체형을 가지고 있다.
물론 굳이 비교를 하자면 환경적 요인들이 있다. 한국의 인구는 약 5100만명, 그중 출생률 꼴찌로 유소년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본의 인구는 1억2000만명이 넘는다. 또 야구를 배워나가는 환경 자체가 다르다. 우리는 적은 인구, 좁은 땅 그리고 경쟁을 통해 어릴 때부터 엘리트 체육으로 '쥐어 짜서' 천재를 길러낸다. 솔직히 한국에서 야구는 어릴 때부터 모두가 자연스럽게 접하는 생활 체육은 아니다. 야구를 즐길 수 있는 장소도 한정적이다. 그러다보니 운동 신경이 있는 선수들 중에서 '골라서' 엘리트 야구 선수를 시작한다. 요즘은 리틀야구가 많이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초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예전과 비슷한 분위기다.
반면 일본은 학교 클럽 체육이 워낙 활성화 돼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스포츠를 해보고, 그중 적성에 맞고 재능이 있는 종목으로 특화시킨다. 설령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실업리그, 사회인리그가 워낙 잘돼있어 야구로 먹고살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된다. '모 아니면 도'가 아니다보니 처음에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부담이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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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경적 차이는 접어두고라도, 프로에 입단한 선수들의 기량 차이는 크지 않은데 이들을 어떻게 키워내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일본 야구를 잘 아는 한 전문가는 "일본 선수들이 기본기를 중요시하는 것은 워낙 널리 잘 알려져있지 않나. 한국의 아마추어 지도자들이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데, 학교 야구부도 당장 성적을 내기 급급하니 기본기에 치중하기가 쉽지 않다. 또 몇몇 유명 감독을 제외하면 코치진에 대한 처우가 워낙 열악하다보니 좋은 지도자가 심혈을 기울여 지도하기도 쉽지 않다"고 이야기 했다.
KBO리그에 열풍이 분 체격 키우기가 기본기에서 더 멀어진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또 다른 일본 야구 전문가는 "한국 투수들은 최근 웨이트를 강화하고 몸과 체격을 키우는데 집중하는 것 같다. 일본 투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코어 운동에 훨씬 더 매진한다"면서 "야마모토의 경우 훈련량이 대단히 많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선발 등판을 하는 날에도 아침 일찍부터 야구장에 나와 훈련하는 선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도 최근에는 미국식 문화가 어느정도 들어오면서 트레이너 파트에서는 '투수 훈련을 너무 많이 시키지 말라'고 말리고, 코치들은 반대하는 상황도 생긴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투수 육성 노하우에 미국식 장점이 더해지면서 시너지가 대폭발 했다. '이도류'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가 된 오타니나 165km를 던지는 사사키 로키, 미야기 히로야, 다카하시 히로토 등 이번 WBC에 출전한 20대 극초반의 젊은 투수들이 그 증거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의 투수 육성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르냐고 하면, 시원하게 결론을 내는 이는 없었다. 일본에서도 다르빗슈 유, 오타니, 사사키는 매우 드물고 타고난 체격 조건의 축복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노력도 많이 하지만). 야마모토 같은 후천척 노력파 또한 존재한다. 이들이 국가대표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모든 투수들이 이들처럼 던지지는 못한다. 체격 조건과 기량이 있는 KBO리그 투수들도 월드클래스가 충분히 될 수 있다.
한 일본야구 전문가는 "왜 한국에는 저런 투수들이 없는지 일본도 답을 못할 것이다. 일본 국가대표도 몇 년 전까지 위기를 겪었었다. 국제 대회 경쟁력에 대한 회의론도 있었다. 하지만 그 위기를 극복해냈고, 좋은 투수들이 등장하며 이제는 세계 최고의 전력을 갖춘 드림팀이 탄생했다. 한국도 좋은 투수들이 없었던 게 아니다. 과거에 박찬호 김병현 류현진 김광현 같은 투수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어떻게 키웠는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냈다.
도쿄(일본)=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