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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이칼럼]SK 야구단 사라진 날, 일본서 개봉한 영화 속 와이번스의 흔적들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21-03-09 06:00


영화 '야구소녀'의 한 장면.

지난 5일 신세계그룹 야구단이 팀명을 SSG 랜더스로 확정했다. SK 와이번스라는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SK 와이번스의 이니셜인 'W'가 일본 전역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다.

157곳의 영화관이었다. SK 구단의 촬영 협조로 만들어져 한국에서 작년 6월에 개봉됐던 영화 '야구소녀'가 일본에서 공개된 날이었다. 영화는 고교 야구팀의 유일한 여자 선수이자 '천재 야구소녀' 라는 별명을 얻은 주인공이 프로팀에 입단하겠다는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내용이다.

영화에는 SK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은 선수와 감독, 인천SK행복드림구장의 모습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화면에 나온다. SK 와이번스가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춘 날 일본에서 SK 구단 상징물을 담은 영화가 공개됐으니 타이밍이 절묘하다.

일본에서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야구를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평가가 다른 장르에 비해 굉장히 냉정하다. 그러니 여자선수가 프로야구 진출을 노린다는 것은 현실감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 중엔 의외로 호평이 많았다.

유명한 야구팬인 탤런트 마쓰무라 구니히로씨는 1970년대에 일본에서 개봉된 영화 '야구광의 시(野球狂の詩)'와 '야구소녀'를 비교했다. 야구광의 시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것으로 주인공인 여자투수가 프로 선수로 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마쓰무라씨는 "만화 야구광의 시가 영화화됐을 때 야구팬 입장에서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야구소녀는 투구폼 , 동작 ,박력 등 납득할 수 있는 정도예요. 또 가족 이야기로서도 멋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착각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웃음이 조금 나면서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일본에서도 프로야구나 고교야구 고시엔 대회에서 여자선수가 약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이 영화는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감정 이입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다. 인간 스토리로서 보는 사람들이 입장에 따라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의 어머니의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또 지난 2월 9일자 칼럼에서 소개한대로 SK 와이번스는 일본 야구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구단이다. 그런 실재했던 프로야구 팀의 엠블럼과 유니폼이 작품 중에 나오는 것이 현실감을 높이고 있다.


야구소녀는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니 일본에서 150곳 이상의 영화관에서 개봉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화려한 연출은 없고 담담하게 진행되는 스토리에 "한국 영화답지 않아 일본에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작품"이라는 감상도 들을 수 있었다.

SK 와이번스는 21년간의 역사를 뒤로 하고 현실에서 없어졌지만, 일본 영화관 스크린 속에서는 연기자들의 가슴에 와닿는 대사와 감정을 흔드는 조용한 배경 음악과 함께 아직도 끈질기게 살아 숨쉬는 듯하다.

<무로이 마사야 일본어판 한국프로야구 가이드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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