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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가고 싶어요."
그렇다면 방법은? 없었다. 미국은 한미일 야구협정이 맺어진 나라다. 무단 진출은 철저히 불가능했다. 한참을 설명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은퇴를 하고 가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만큼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미국 진출을 꿈꾸기 시작한 건 꼭 1년 전, 그가 커리어하이(12승)를 찍었던 1998년이었다. "어느 날 문득 메이저리그나 일본에서 뛰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됐어요." 그 순간부터 그는 그 강력한 꿈에 사로잡혔다.
도전 과정도 독특했다. 마치 시지푸스 같았다. 남들이 무모하다고 했지만 끊임 없이 바위를 밀어올렸다. 그의 야구 중심은 미국이었다. KIA와 롯데 복귀 조건은 '미국 진출 시 조건 없이 풀어주는 것'이었다. 2006년, 2009년 등 메이저리그를 향한 그의 도전은 결국 결실을 맺지 못했다.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2009년 트리플A 앨버커키에서 9승2패, 평균자책점 2.34로 맹활약 했지만 끝내 빅리그 콜은 없었다. "동료들이 '네 나이가 많아서'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의 표정에 허탈함이 살짝 흘렀다. 열살 이상 어린 친구들과 함께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반나절을 이동하는 생활도 힘들지 않았다. "햄버거랑 스파게티도 맛있다. 여기 체질인 것 같다"며 씩씩하게 이야기를 했던 그였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서까지 꿈을 이어가던 최향남은 2015년 오스트리아 세미프로리그에 진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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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오가던 그의 야구인생에 딱 하나, 아쉬움이 있었다. '영어'였다. 미리 기초를 쌓고 갔더라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그 아쉬웠던 마음은 또 다른 '도전'으로 그를 이끌었다. 경북 문경의 글로벌 선진학교 야구부 감독 부임이었다. 이 학교 야구부 학생들은 '공부하는 선수들'이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듣고 오후부터 운동을 한다. 고작 3시간여의 훈련 시간. 직업선수를 꿈꾸는 선수들로서는 선뜻 진학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지금도 여전히 선수 수급에 애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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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선수들을 키우는 일은 그에게 또 다른 도전이었다. "수십명의 야구부 선수 중 주전 외에는 대부분 공부도 못하고, 야구도 못하고 끝나는 게 현실이잖아요. 공부를 하는 선수 중에서도 야구를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불가능한 도전이 또 다시 시작됐다. 지난해 야구부는 달랑 9명. 투구수 제한까지 있는 상황에서 대회를 소화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 했다. 하지만 최향남 감독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냈다.
"9명이 안 아프고 대회를 다 치렀어요. 학생들은 아프지 않은 것이 중요해요. 번갈아 던지는 투수들에게 몸 상태를 하나씩 물어가면서 훈련과 휴식을 조절했지요. 더 던져야 하는 통증이 있고, 쉬어야 하는 통증이 있거든요."
이 모든 통증을 달고 살았던 자신의 현장 경험에서 얻어낸 마법이었다. 그는 야구부 졸업생 4명을 모두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4명 중 2명은 야구로 대학에 진학했다. 1명은 수시로 진학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우완 투수 유망주 진우영(18)은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와 계약을 맺고 미국에 진출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수업 다 받고, 숙제와 공부 다 하면서도 야구를 진짜 열심히 했어요. 멋진 친구죠. 몸이 크고 하드웨어가 좋은데 처음에는 폼이 좋지 못했어요.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는데 이 친구가 야구를 너무 너무 좋아해 정말 하루도 안 쉬고 따라오더라고요."
캔자스시티 캠프 애리조나 서프라이즈에 머물고 있는 진우영은 의사소통을 영어로 다 할 정도로 빠르게 현지 적응을 하고 있다. 기존에 메이저리그 구단에 진출했던 선수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 결과 차이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스승 최향남은 현재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 겨울을 피해 따뜻한 곳에서 몸을 만들고 있다. "중국리그 코치를 알아보고 있어요." 물론 가능하다면 선수로서도 뛸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모색중이다. 영원한 현역, 최향남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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