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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後 인터뷰]'영원한 현역' 최향남, '공부하는선수'를 만나다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9-02-07 07:00


최향남 제공.

"미국가고 싶어요."

전화기 넘어 들리는 LG 투수 최향남의 목소리. 귀를 의심했다. 대체 왜? "딱 한번만이라도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던지고 싶어요."

20년 전, 1999년 당시 통화 내용이다. 당시 FA제도가 막 도입됐지만 그는 당연히 무자격 선수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었다. 미국은 한미일 야구협정이 맺어진 나라다. 무단 진출은 철저히 불가능했다. 한참을 설명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은퇴를 하고 가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만큼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미국 진출을 꿈꾸기 시작한 건 꼭 1년 전, 그가 커리어하이(12승)를 찍었던 1998년이었다. "어느 날 문득 메이저리그나 일본에서 뛰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됐어요." 그 순간부터 그는 그 강력한 꿈에 사로잡혔다.

보통 사람들은 꿈과 괴리된 현실을 산다. 하지만 최향남은 달랐다. 꿈을 현실화 하는 방법을 모색했고, 하나둘씩 실천에 옮겼다. (훗날 그는 기어이 미국에 진출한다. "단 한순간도 그 꿈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도전 과정도 독특했다. 마치 시지푸스 같았다. 남들이 무모하다고 했지만 끊임 없이 바위를 밀어올렸다. 그의 야구 중심은 미국이었다. KIA와 롯데 복귀 조건은 '미국 진출 시 조건 없이 풀어주는 것'이었다. 2006년, 2009년 등 메이저리그를 향한 그의 도전은 결국 결실을 맺지 못했다.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2009년 트리플A 앨버커키에서 9승2패, 평균자책점 2.34로 맹활약 했지만 끝내 빅리그 콜은 없었다. "동료들이 '네 나이가 많아서'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의 표정에 허탈함이 살짝 흘렀다. 열살 이상 어린 친구들과 함께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반나절을 이동하는 생활도 힘들지 않았다. "햄버거랑 스파게티도 맛있다. 여기 체질인 것 같다"며 씩씩하게 이야기를 했던 그였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서까지 꿈을 이어가던 최향남은 2015년 오스트리아 세미프로리그에 진출하기도 했다.


캔자스시티에 입단한 글로벌선진고 출신 투수 유망주 진우영. 사진제공=진우영

출처=글로벌선진학교 홈페이지
그의 인생에 정해진 '결과'는 없었다. 오직 '과정'만이 있었을 뿐이다. '메이저리그'의 꿈을 품는 순간 부터 그는 단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겨우내 강원도 화천의 화악산에 들어가 마치 겨울잠을 잊은 짐승처럼 눈 덮힌 설산을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힘 좋은 미국 타자들을 제압할 수 있는 볼 끝 강화와 타이밍 제압 비법을 끊임 없이 연구했다. 몸이 아플 때 스스로 진단하고 극복하는 요령도 익혔다. 술이 식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낸다는 '향운장'이란 별명은 그 때 얻었다. 피해가지 않고 바로 찔러넣는 138㎞ 짜리 몸쪽 직구에 타자들이 얼어붙었다. 희한할 정도로 연타를 허용하지 않는 노장 투수, 그는 미스터리였다.


미국을 오가던 그의 야구인생에 딱 하나, 아쉬움이 있었다. '영어'였다. 미리 기초를 쌓고 갔더라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그 아쉬웠던 마음은 또 다른 '도전'으로 그를 이끌었다. 경북 문경의 글로벌 선진학교 야구부 감독 부임이었다. 이 학교 야구부 학생들은 '공부하는 선수들'이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듣고 오후부터 운동을 한다. 고작 3시간여의 훈련 시간. 직업선수를 꿈꾸는 선수들로서는 선뜻 진학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지금도 여전히 선수 수급에 애를 먹는다.


글로벌선진학교 시절. 왼쪽부터 정현발 감독, 진우영, 최향남. 제공=진우영
최향남과 글로벌 선진학교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아이들을 지도하던 LG 시절 후배 김혁섭을 만나러 갔다가 눌러 앉았다. "김 감독이 그만두면서 당시 야구부 학생이 몇 명 남아있지 않았어요. 재능기부로 1년만 있기로 시작한 일이 2년이 흘렀죠."

공부하는 선수들을 키우는 일은 그에게 또 다른 도전이었다. "수십명의 야구부 선수 중 주전 외에는 대부분 공부도 못하고, 야구도 못하고 끝나는 게 현실이잖아요. 공부를 하는 선수 중에서도 야구를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불가능한 도전이 또 다시 시작됐다. 지난해 야구부는 달랑 9명. 투구수 제한까지 있는 상황에서 대회를 소화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 했다. 하지만 최향남 감독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냈다.

"9명이 안 아프고 대회를 다 치렀어요. 학생들은 아프지 않은 것이 중요해요. 번갈아 던지는 투수들에게 몸 상태를 하나씩 물어가면서 훈련과 휴식을 조절했지요. 더 던져야 하는 통증이 있고, 쉬어야 하는 통증이 있거든요."

이 모든 통증을 달고 살았던 자신의 현장 경험에서 얻어낸 마법이었다. 그는 야구부 졸업생 4명을 모두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4명 중 2명은 야구로 대학에 진학했다. 1명은 수시로 진학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우완 투수 유망주 진우영(18)은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와 계약을 맺고 미국에 진출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수업 다 받고, 숙제와 공부 다 하면서도 야구를 진짜 열심히 했어요. 멋진 친구죠. 몸이 크고 하드웨어가 좋은데 처음에는 폼이 좋지 못했어요.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는데 이 친구가 야구를 너무 너무 좋아해 정말 하루도 안 쉬고 따라오더라고요."

캔자스시티 캠프 애리조나 서프라이즈에 머물고 있는 진우영은 의사소통을 영어로 다 할 정도로 빠르게 현지 적응을 하고 있다. 기존에 메이저리그 구단에 진출했던 선수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 결과 차이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스승 최향남은 현재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 겨울을 피해 따뜻한 곳에서 몸을 만들고 있다. "중국리그 코치를 알아보고 있어요." 물론 가능하다면 선수로서도 뛸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모색중이다. 영원한 현역, 최향남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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