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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박병호(32)가 알을 깨고 세상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많은 야구팬이 등번호 '52'하면 한화 이글스 김태균(36)을 떠올렸다. LG 트윈스 시절 존재감이 희미했던 '유망주' 박병호, 그가 '히어로즈 4번 타자'로 홈런을 마구 쏟아내면서, 52번를 상징하는 주인이 바뀌었다. 팬들은 환호했다. 이만수와 장종훈, 이승엽으로 이어지는 한국 프로야구 홈런타자 계보를 잇는 히어로의 등장. 이만수는 3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고, 장종훈은 한시즌 첫 40홈런을 때렸으며, 이승엽은 50홈런 시대를 열고 56홈런을 쏘아올렸다. 대선배들 처럼 박병호는 사상 첫 2년 연속 50홈런, 4년 연속 홈런왕으로 선명한 발자국을 남겼다. 그런데 박병호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인 선수다. 올해 만 32세. 선수로서 절정으로 치닫는 나이, 앞으로 보여줄 게 많은 연차다.
이쯤에서 이승엽이 걸어온 길을 더듬어 보자. 고교 졸업과 함께 19세에 데뷔한 이승엽은 9시즌을 뛰면서, 324홈런을 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28세에 일본에 진출해 타자로서 절정의 시기를 보내며 좌절과 영광을 모두 맛봤다. 일본생활 8년을 뒤로하고 36세에 복귀한 이승엽은 이후 6년 간 143홈런, 평균 23.8홈런을 생산했다. 이 기간에 5차례 20홈런을 넘기고, 2014년엔 32개를 쳤다.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클래스는 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박병호의 복귀 시점이 이승엽보다 4세 젊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펼쳐질 그림이 보인다. 아쉬움이 컸던 지난 2년 간의 미국생활이 박병호의 새로운 도전에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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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진출 직전 시즌인 2003년 56개를 때린 이승엽이나, 2015년 53개를 친 박병호 모두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다만, 한국 프로야구 공백기간이 짧은 박병호가 30대 중반을 넘겨 돌아 온 이승엽보다 최고 시기를 길게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3시즌 연속 50홈런 뿐만 아니라, 한시즌 최다 홈런 기록까지 노려볼 수 있다. 물론, 상대적으로 펜스까지 거리가 짧은 목동야구장에서 고척 스카이돔으로 바뀐 홈구장 등 달라진 환경에 적응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지난 2년간 겪은 시련, 실패가 소중한 경험이 됐을 것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의 계기, 자양분이 될 수 있다. 빠른 스피드에 고전해야 했던 메이저리그와 비교해보면, KBO리그는 만만하게 다가올 것이다.
박병호는 9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이승엽 선배가 같이 뛸 때 좋은 얘기를 해주셨고, 자기 기록을 꼭 깼으면 하는 바람을 전달해주셨다"고 했다. 이승엽은 "박병호가 내 기록을 깨줬으면 좋겠다. 박병호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박병호의 2018년 새 시즌, 앞으로가 궁금하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