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까지 마친 2017 한국시리즈는 명승부의 향연이다. 1차전에서는 두산 베어스 중심 타선의 홈런쇼가 펼쳐졌고, 2차전에서는 KIA 타이거즈 에이스 양현종의 완봉 역투가 빛났다. 가을 잔치의 마지막 무대에 어울리는 멋진 승부다. 11번째 우승을 노리는 KIA와 3년 연속 챔피언을 꿈꾸는 두산의 대결은 처절하고도 아름다웠다.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선수들의 간절함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1, 2차전에 나온 두 가지 인상 깊은 장면이 이런 선수들의 간절함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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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조급해지는 건 1차전에 패한 KIA쪽이다. 양현종은 호투했지만, 타선은 득점의 실마리를 좀처럼 풀지 못했다. 그러면서 3루측 관중석의 KIA 홈팬들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응원 함성에 힘이 빠져갔다. 양현종이 관중의 응원을 유도한 건 바로 이 순간. 8회초도 무실점으로 막아낸 양현종은 더그아웃으로 들어 오다가 돌연 관중석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응원단상 쪽을 가리킨 뒤 양팔을 들어 올리며 응원을 북돋우는 동작을 반복했다.
이미 투구수가 100개를 넘긴 시점. 아무리 양현종이라도 지칠 만 하다. 게다가 한국시리즈의 중압감은 정규리그에 비해 훨씬 크다. 그만큼 피로감도 심할 것이다. 그런데도 양현종은 오히려 이 순간에 팬들을 봤다. 마치 '나는 더 던질 수 있으니까, 타자들도 이제 힘을 내서 점수를 뽑아줄 테니까. 팬들도 지치지 말고 조금 더 응원해달라. 그래서 우리에게 힘을 실어 달라'라고 외치는 듯했다. 양현종의 '응원 유도'에는 승리에 대한 간절함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에이스의 모습이 팬들의 마음에 감동의 불을 질러버렸다. KIA 팬들의 함성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기적처럼 곧바로 이어진 8회말 공격에서 KIA 타선이 1점을 뽑는다. 이날의 결승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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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하루 앞선 지난 25일 1차전에서는 두산 오재원이 또 다른 형태로 자신의 승리에 대한 간절함을 피력했다. 이번 한국시리즈의 명장면 중 하나로 기록될 '글러브 투척'이다. 3-5로 뒤진 8회말 KIA 공격. 선두타자 최형우의 타구가 바로 오재원의 앞에서 불규칙 바운드로 튀어올라 안타가 됐다. 오재원은 최형우를 잡기 위해 원래 위치에서 더 우측 외야 쪽으로 이동한 시프트를 걸고 있었다. 타구가 이렇게 이동한 오재원의 정면으로 향해 '예측 수비'가 성공하려던 찰나, 내야 그라운드와 외야 잔디의 경계에 타구가 맞고 오재원의 키를 넘어갔다.
그러자 오재원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글러브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KIA 선수들을 자극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그저 뜻밖의 상황(불규칙 바운드) 때문에 수비에 실패한 것이 분하고 짜증났던 것이다. 5-3, 겨우 2점차 리드에서 8회말 선두타자를 내보낸 것도 오재원의 화를 키웠다.
하지만 이런 오재원의 모습이 건방지거나 불량하게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이기고 싶어하는 지가 확 느껴졌다. 시즌 최후의 챔피언을 가리는 한국시리즈 무대다. 작은 플레이 하나로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다. 방심은 허용할 수 없다. 그래서 오재원은 이 장면에서 거칠게 글러브를 내던진 것이다. 화가 나서이기도 했지만, '정신차리자!'라는 의미도 있었다.
실제로 오재원은 무사 1, 2루에서 병살 플레이를 만들고 마냥 기뻐하는 후배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모습도 보여줬다. 병살 플레이를 완성한 3루수 허경민이 투수 김강률과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무심코 3루를 비우자 다급히 뛰어오며 소리쳤다. 오재원이 어떤 각오를 한 채 경기를 치르고 있는 지 확실히 보여준 장면. 그야말로 진정한 프로의 모습이다.
양현종과 오재원이 보여준 승리에 대한 간절함. 이런 모습들이 올해 한국시리즈를 더욱 명승부로 만들어내고 있다. 과연 누가 최후에 웃게 될 것인가. 3차전이 기다려진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