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필자는 취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일본 TV방송국 스태프들과 함께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 있었다.
1회초, 20대 일본인 남성 PD는 SK의 선발투수가 초구를 던지는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이 투수의 투구폼은 좀 이상하다. 볼에 힘도 없네". 필자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일본인 PD는 그 투수가 마운드에 서 있는 배경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2006년 3월에 열렸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그해 일본 취재진은 한국대표팀의 선수명단을 보면서 "왜 이 선수가 대표팀에 발탁됐나?"라는 질문을 필자에게 많이 했다. 바로 전병두였다. 통산성적은 90경기 등판 3승6패 5세이브. 그런 프로 4년차 투수가 대표팀에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신기한 일이었다.
그때 필자는 전병두가 한국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는 점을 설명했다. "한국에는 좌완투수가 부족했고 강속구를 자랑하는 전병두는 중간투수로서 활용가치가 있다". 덧붙여 다음 설명은 일본 미디어에 상당한 설득력을 부여했다. "선동열 대표팀 투수코치가 그를 추천 했어요".
WBC 대회기간 동안 경기전 전병두는 스타급 선수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항상 조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단 마운드에 올라가면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3월 18일 준결승 한일전(미국 페트코파크). 6회초 0-0 상황에서 두 번째투수로서 마운드에 올랐던 전병두는 세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했다. 전병두는 다음 이닝에 마쓰나카에게 2루타를 허용하고 교체됐지만 자기 역할을 완수했다.
SK가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 전날인 10월 14일은 전병두의 생일였다. 그 날 훈련중인 전병두에게 "생일 축하해요"라고 말했다. 고개를 숙이며 모기소리로 "감사합니다"라며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내 자리를 떴던 선수. 그렇게 수줍음 많은 전병두였지만 타자를 상대할 때는 달랐다.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전병두는 4경기에 등판해 2승무패 무실점. SK는 전병두의 활약에 힘입어 4연승으로 삼성을 꺾고 우승컵을 안았다.
자신의 은퇴경기에서 한 타자를 처리한 뒤 마운드를 내려간 전병두. 팀 동료인 김광현(28)이 포옹했다.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필자는 그 때 한 장면이 떠올라 미소가 나왔다. 2009년 8월 28일의 삼성전(대구). 그 날 전병두는 자신의 유니폼을 잃어버려 김광현의 유니폼을 입고 6번째 투수로서 등판했다. 이 모습을 본 13명의 일본인 관광객들(필자가 인솔)은 김광현이 등판했다며 열광했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29번 유니폼을 입은 그 날의 전병두는 1⅔이닝 무안타 무실점 세이브를 올렸다.
개인통산 281경기 29승29패 16세이브 14홀드 평균자책점 3.86. 그 숫자만 보면 특별하게 뛰어난 선수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위력적인 직구가 인상적이고 다양한 역할로 팀에 공헌한 것은 일류선수의 모습였다. 또 5년간의 재활끝에 맞이한 은퇴경기는 아주 감동적이었다. 실적(성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은퇴 세리머니는 '의외의 매력이 있는 남자' 전병두다운 자리였다. 전병두의 제2 인생이 그의 성실한 성격대로 기복없이 좋은 날만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무로이 마사야 일본어판 한국프로야구 가이드북 저자>
- Copyrightsⓒ 스포츠조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