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신인왕 후보는 둘로 압축됐다. 삼성 구자욱(22)과 넥센 김하성(20)이다. 5월까지만 해도 김하성의 이름이 먼저 나왔지만 구자욱이 판을 뒤집었다. 이젠 김하성이 추격하는 모양새다.
구자욱은 타율 0.348(3위) 64득점(9위) 98안타(13위) 2루타 26개(3위) 9홈런(33위) 44타점(30위) 12도루(14위)를 기록하고 있다. 김하성은 타율 0.280, 13홈런 52타점이다. 홈런과 타점을 제외하곤 모두 구자욱이 낫다. 김하성은 수비부담이 많은 유격수로 맹활약하고 있지만 구자욱도 팀 수비 공백을 전천후로 막고 있다. 1루수, 3루수, 중견수, 우익수까지. 야구센스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바뀐 수비 포지션에 발빠르게 대처하면서도 고감도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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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KIA-삼성전. 배우 채수빈과의 열애설 해프닝으로 하루 종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삼성 구자욱이 1회말 2사 3루 삼성 최형우의 안타 때 홈인하고 있다. 열애설 이후에도 구자욱은 여전히 잘 하고 있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0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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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욱은 슈퍼스타의 자질을 지녔다. 타고난 재능에 코칭스태프로부터 성실함도 인정받았다. 잘생긴 외모는 요즘 또 하나의 재능으로 여겨진다. 구자욱이 신인왕에 오르든, 못 오르든 야구인생은 길다. 신인왕 출신, 또는 근접했던 선수들, 2년차나 3년차에 기량이 급성장한 선수들, 이들 중 많은 이는 롱런하지 못하고 꿈을 접었다. 부상이라는 불운, 생각지도 못한 경쟁자로 인한 기회 손실 등 변수는 많다. 하지만 최고의 적은 내재된 자만과 나태다.
구자욱은 굳이 인생의 모범답안을 찾으려 포털사이트 검색을 하지 않아도 되고, 도서관을 찾을 이유도 없다. 그냥 옆을 보면 된다. 올해 한국나이로 불혹인 이승엽이 고맙게도 팀선배다. 더 고맙게도 이승엽은 자주 구자욱을 토닥이며 아끼고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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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일 포항구장에 열린 롯데-삼성전. 삼성 이승엽이 개인통산 400홈런을 친 뒤 꽃다발을 전해주고 축하를 해준 상대팀 롯데 덕아웃을 향해 모자를 벗고 90도로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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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한화전에서 이승엽은 2개의 결정적인 홈런을 터뜨리며 팀에 승리를 안겼다. 여전히 공부하고, 땀흘리고, 열심히 야구와 맞서는 이승엽이다. 국내야구 개인통산 400홈런을 돌파하고, 한일통산 600홈런과 2500안타를 가시권에 두고 있지만 달라진 건 없다. 이날 이승엽은 홈런을 친뒤 방망이를 손에 쥐고 몇걸음 내딛다 묵묵히 그라운드를 돌았다. 요즘 선수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져 있는 '배트 플립(배트 던지기)'도 없고 이렇다할 홈런 세리머니도 없다. 그냥 일상인양 치고 달릴 뿐이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기도 하지만 상대 투수에 대한 작은 배려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착한 남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하지 않겠지만 20년 가까이 현장에서 그를 봐온 기자도 이승엽 한명 쯤은 그렇게 남아줬으면 하는 말도 안되는 욕심을 부릴 때가 있다.
이승엽도 젊은 시절엔 구자욱처럼 슬림하고 잘생긴 남자였다. 여성팬들 사이에 '오빠부대'도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늘 야구가 우선이었다. 이승엽은 야구장 안팎에서 이런 저런 구설수에 한번도 오르지 않았다. 최고의 야구선수 이전에 좋은 사람, 좋은 남자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야구선수라고 해서 사생활이 없을 순 없다. 구자욱은 이미 국내 야구선수 중 손꼽히는 유명인이 됐다. 알아보는 사람도 많고, 인연을 맺고자 하는 이들도 넘쳐날 것이다. 하루 24시간 야구만하고 살순 없다. 공과 사를 구분하고 맺고 끊음만 확실하면 된다. 구자욱의 야구인생이 어떻게 발전할 지 누가 속단하겠는가. '제2의 이승엽'이 돼 홈런왕이 될수도, '한국의 이치로'로 안타제조기가 될 수도 있다. 허나 분명한 건 지금에 만족하고 우쭐하다보면 이승엽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제 프로생활을 시작하는 어린 선수에게 레전드를 언급하는 것은 구자욱의 자질을 두고 '일년에 한명 나올까말까하는 인재'라고 말하는 야구인이 꽤 있기 때문이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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