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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집을 비우라면서 새집을 지었으니 그쪽으로 가라고 강요한다. 그런데 어떤 조건으로, 어떤 방식으로, 언제쯤 이사할 지 아무런 얘기가 없다. 서울 목동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힘없는 세입자' 넥센 히어로즈의 처지가 딱하다.
서울시는 일방적으로 히어로즈 구단의 고척돔 이전을 기정사실화 했다. 히어로즈 구단이 한 번도 공식적으로 고척돔으로 연고지를 이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스포츠조선과 전화통화에서 "고척돔은 서울시와 서울시민의 재산이다. 구장 운영에 얼마나 필요한가를 따져보고 있다. 공인회계사 등이 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 산하 시설공단이 돔구장을 직접 운영할 지, 아니면 히어로즈 구단에 운영권을 줄 지는 다음 문제다"고 했다.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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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울시는 산하 시설관리공단을 통해 운영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경우 히어로즈는 세입자 신분으로 홈구장에 대한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고 경기장 사용일수에 따른 사용료를 내거나, 입장권 수익 배분 등의 조건하에 경기장을 사용하게 된다. 위험 부담을 안고, 타의에 의해 이전을 하면서도 히어로즈는 고척돔구장 운영비 일부는 부담하는 대체재 취급을 받게 된다.
현 상황에 대해 히어로즈 구단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서울시 눈치를 봐야하는 철저한 약자이기에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서울시가 일방통행식으로 계속해 몰아붙인다면, 히어로즈가 아니라 야구인 전체 차원에서 대응이 필요하다. 계속해서 눈치를 볼 게 아니라 모든 것을 공무원 시각에서 관리하려고 하는 서울시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히어로즈 구단도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히어로즈 구단 뒤에는 야구인과 야구팬, 서울시민이 있다.
대다수 구단이 모기업의 지원을 줄여가면서 구단 자립을 위해 애쓰고 있다. 더구나 히어로즈는 모기업 없이 자체 수입으로 팀을 힘들게 꾸려왔다. 지난해 30억원이 넘는 적자를 봤고, 올해는 60억원 이상이 예상된다. 열심히 노력하고 지혜를 짜내면 야구를 통해 구단 운영비를 마련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도전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구단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방송중계권료, 입장권 수입, 광고수입 등은 한계에 다다랐다.
히어로즈 구단은 공기업이 아니지만 공공재에 가까운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민이 응원하고 서울시민이 팬인 야구전문기업이다. 서울시가 직접하기 어려운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 취미생활을 돕는 등 여러가지 역할을 해왔다. 단순히 영리에 집착하는 기업집단이 아니다.
서울시는 대전과 인천, 부산 등 야구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적극적으로지원하고 있는 지자체를 돌아봐야 한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