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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에릭 딸 앞에서 첫 승, "평생 잊지 못할 하루"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3-09-27 21:24



"나의 첫번째 팬인 아내와 딸이 야구장에 온 날, 그들 앞에서 승리해 평생 잊지 못할 하루가 될 것 같다."

NC 에릭이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호쾌한 삼진 퍼레이드로 데뷔 후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다. 59일만에 승리도 따라왔다.

에릭은 27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해 시즌 4승(10패)째를 올렸다. 8이닝 2실점. 7월 30일 SK전 이후 59일만에 거둔 승리다. 투구 내용도 돋보였다. 팀내에서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13개)을 세우는, 한국무대 데뷔 이후 최고의 피칭이었다. 에릭의 호투의 비결은 바로 새로 생긴 '가족'이었다.

이날은 지난 19일 서울에서 태어난 에릭의 첫 딸, 칼리 마리 해커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피칭을 본 날이었다. 에릭의 부인 크리스틴은 출산 후 처음 야구장을 찾아 귀빈실에서 딸과 함께 에릭의 호투를 지켜봤다.

에릭은 지난 16일 창원 넥센전 등판 이후 아내의 곁을 지켜왔다. 출산 이후 아내와 함께 서울에 있던 에릭은 NC가 서울 원정을 온 지난 25일 팀에 재합류했다. 이날은 11일만의 등판이었다.

에릭은 딸을 한국에서 출산한 데 대해 "고국으로 돌아가 낳으면 팀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딸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한국에서 출산했다"며 팀에 대한 책임감을 보였다. 대개 외국인선수의 부인은 고국으로 돌아가 출산하고, 선수 본인도 따라 들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에릭은 팀에 피해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해 아내를 설득했다.

딸의 기운을 받아서 일까. 에릭은 경기 초반부터 호쾌한 삼진 퍼레이드를 선보였다.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살아 들어가는 특유의 볼끝은 여전했다. 오히려 평소보다 좋아보였다. 1회초 선두타자 고동진을 투수 앞 땅볼로 잡아낸 뒤, 이대수와 김경언을 모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결정구는 바깥쪽으로 완벽히 제구된 강력한 직구였다.

정규이닝을 채운 투수 중 가장 적은 3승(10패)을 수확했을 만큼, 불운했던 그다. 완투패가 2번이나 있었다. 잘 던져도 타선 침묵이나 불펜진 난조로 승리를 날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1회말부터 화끈하게 득점지원을 해줬다. NC 타선은 상대 선발 이브랜드의 제구가 흔들린 틈을 타 3점을 냈다. 최근 NC의 득점력을 감안하면, 놀라운 득점 지원이었다. 타자들 역시 모두 에릭의 승리를 기원하는 듯 했다.

에릭은 2회 선두타자 김태균에게 바깥쪽 높은 직구를 던지다 솔로홈런을 맞고 첫 실점했다. 바깥쪽으로 잘 제구된 공이었지만, 김태균이 잘 밀어쳤다.

하지만 이후 흠잡을 데 없는 피칭이 계속 됐다. 홈런 이후 세 타자를 삼진, 내야땅볼 2개로 잡아낸 에릭은 3회엔 세 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했다. 이번엔 변화무쌍한 레퍼토리가 돋보였다. 직구 위주의 피칭에서 변화구를 적재적소에 섞었다. 슬라이더, 커브, 직구로 삼진 3개를 잡아냈다. 타자 입장에선 어떤 공이 들어올 지 예측하기 힘든 승부였다.

4회 선두타자 이대수에게 좌익수 왼쪽으로 향하는 2루타를 맞았지만, 실점은 없었다. 김경언을 삼진으로 돌려 세운 뒤, 김태균과 정현석을 내야 땅볼로 잡았다.

에릭은 5,6,7회를 모두 삼자범퇴로 마쳤다. 이렇다 할 결정구 없이 상황에 맞게 들어오는 공에 한화 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8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에릭은 첫 타자 이양기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팀내 한 경기 최다 탈삼진 타이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송광민과 오선진에게 연속안타를 맞으면서 잠시 흔들렸다. 전현태를 1루수 앞 땅볼로 잡았지만, 고동진에게 좌전 적시타를 맞고 1실점했다.

계속된 2사 1,2루 위기. 에릭은 이대수를 5구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위기에 몰리자 다시 직구에 힘이 실렸다. 직구 구속이 경기 초반보다 더 높게 나올 정도로 이를 악물고 공을 던졌다.

이대수를 삼진으로 잡아내 에릭은 NC의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웠다. 종전엔 이재학의 12개였지만, 이날 에릭은 13개의 탈삼진으로 새 기록을 썼다. 에릭의 종전 기록은 7개였다. 이날 피칭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8회까지 105개의 공을 던진 에릭은 9회에 손민한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8이닝 동안 홈런 1개 포함 5안타만을 허용하며 2실점. 4사구 하나 없이 탈삼진 13개를 기록했다. 마무리 손민한은 팀의 3대2 승리를 지켜내며 에릭의 시즌 4승을 도왔다.

경기 후 에릭은 "지금 매우 흥분된다. 부인과 딸이 같이 온 특별한 날이기도 하고, 그들 앞에서 승리할 수 있어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가족이 보는 앞에서, 특히 딸 앞에서 처음 던졌지만 평소와 다른 건 없었다. 에릭은 "마운드에서 특별히 마음가짐이 달라지거나 한 건 없다. 평생 마운드 위에서 던졌고, 그게 내 직업이다. 오늘도 팀이 승리하는 데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탈삼진 신기록에 대해서는 "기록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제구가 되면서 원하는 곳에 집중해 던진 게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이어 아내와 딸을 향해 "오늘 와줘서 고맙다. 나의 첫번째 팬인 아내와 딸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다.

NC 김경문 감독은 에릭에 대해 "내년 시즌에 더욱 잘 던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올시즌 승운이 없었지만, 한국무대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가 강한데다 딸까지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낳을 정도로 한국생활에 대한 만족감이 크다. 첫 딸과 함께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강한 의지가 실력으로 나타날 것이란 믿음이다.


창원=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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