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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선발투수 불펜 투입 안 합니다. 잘못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커요."
하지만 이번엔 당하지 않겠단 생각이 강하다. 롯데는 3연전에 송승준-옥스프링-유먼을 차례로 내세울 예정이다. 팀의 1~3선발이다. 휴식을 앞두고 로테이션상 순서가 좋았다.
이 기간 롯데는 4,5선발인 고원준과 이재곤을 1군 엔트리에서 말소한다. 둘 모두 선발등판 다음날인 23일과 24일 엔트리에서 빠졌다. 대신 불펜과 야수 자원을 보강하기로 했다. 홀수구단 체제로 1개 팀씩 돌아가면서 쉬는 시스템에서, 많은 팀이 활용하는 방식이다.
사실 수년간 선발투수의 불펜 투입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었다. 불펜피칭을 대신해 경기 막판 1이닝 정도를 막게 하는 방법이 몇몇 팀에서 재미를 보면서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에도 여전히 요지부동인 이가 있다. 바로 롯데 김시진 감독이다. 20승을 두 차례나 달성하고 현역 시절 124승을 올린 명투수 출신, 게다가 그는 투수왕국 현대를 만들었던 투수 조련사다. 투수 분야에 있어서는 확실한 이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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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은 휴식을 앞둔 팀 운영 계획을 밝히면서 선발투수의 불펜 투입에 대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시즌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면 모를까, 난 선발투수를 중간계투로 투입시키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결과도 성공과 실패로 나뉘어진다. 다승 단독 1위(9승)인 KIA 양현종은 시즌 초반이었던 지난 4월 9일 광주 두산전에서 구원등판해 4⅔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다음 선발등판인 4월 16일 광주 LG전서 5⅔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바 있다.
휴식을 앞두고 선발등판 대신 두번째 투수로 나섰지만, 문제는 없었다. 양현종은 지난 20일 대전 한화전에서도 두번째 투수로 등판해 2⅔이닝 무실점하고 구원승을 챙겼다.
실패 사례도 있다. 시즌 초반 괴물 같은 페이스를 보이던 SK 레이예스는 4월 28일 인천 한화전에서 구원등판해 3이닝 1실점한 뒤, 페이스가 뚝 떨어졌다. 이날을 기점으로 급격한 내리막을 탄 것이다. 4일 휴식 후 선발등판한 5월 3일 대전 한화전에선 4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이후에도 한동안 고전이 계속 됐다.
물론 양현종과 레이예스는 불펜등판 후 휴식일에 있어 차이가 크다. 양현종은 일주일 뒤에 마운드에 올랐지만, 레이예스는 기존 패턴대로 단 4일 만을 휴식하고 5일째에 등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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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피칭을 대신해 마운드에 오르는 것 역시 부정적이었다. 김 감독은 "불펜에서는 투수가 스트레스 하나 없이 공을 던진다. 하지만 실제 마운드에 오르면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게 된다. 당연히 정신적 뿐만 아니라 육체적 데미지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이 변칙운용을 거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과거 그는 승리를 거둔 뒤, 이틀 뒤 마운드에 올라 세이브 거두는 일을 밥 먹듯 했다. 85년엔 25승(5패)을 거두면서 10세이브를 올렸다. 김 감독은 "감독이 성적 내자고 투수 하나를 희생시킬 수 없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클 수 있다"고 했다.
프로야구는 팀당 128경기를 치르는 장기레이스다. 때론 승부를 걸 필요도 있지만, 참고 다음 기회를 도모해야 할 때도 있다. 선발투수의 불펜 투입이야말로, 승부를 걸어야 할 때와 아닐 때를 잘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물론 남발해선 안 되는 게 바로 승부수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