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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군단이 이를 악물었다. 더이상의 추락은 용납할 수 없었다. KIA 선수단의 '각성효과'가 팀을 연패에서 구해냈다.
포수 차일목이 2일 광주 LG전을 앞두고 삭발을 하고 라커룸에 나타났다. 차일목을 본 서재응과 최희섭이 "나도 하겠다"며 라커룸에서 직접 삭발을 감행했다. 베테랑들의 굳은 의지는 후배들에게 퍼져 나갔다. 서로가 서로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면서 결의를 다졌다. 선수들의 의지를 느낀 김평호 정회열 코치도 삭발 대열에 동참했다.
물론 삭발이 곧 성적 향상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2일 경기에선 단체 삭발에도 4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LG에 거짓말 같은 역전승을 헌납했다.
모두가 '지금 이 순간이 위기구나'라는 걸 느꼈다. 삭발하면서 '새로운 마음'을 다짐했던 선수들은 위기의식을 가졌다. 그 변화는 4일 부산 롯데전부터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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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석엔 5번타자 최희섭. 5월 들어 극심한 부진을 겪으면서 중심타자로서 역할을 못한 그였다. 볼카운트 2B1S에서 잡아당긴 타구는 2루수 왼쪽으로 깊숙히 향했다. 롯데 2루수 정 훈은 깊숙한 타구를 낚아내 2루에 송구했다.
이래서 야구가 재밌다고 하는 듯 하다. 이닝을 종료시키지 못하자, 다음 타자 이범호의 2점홈런이 나왔다. 한복판으로 몰린 롯데 선발 이재곤의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5-2, KIA가 한숨 돌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쐐기 홈런포였다.
모두가 달아나는 점수를 만들어낸 이범호를 칭찬할 것이다. 하지만 경기 후 이범호는 "병살타성 타구에 최희섭 선배가 전력질주를 해 내게 기회가 온 것 같다. 최희섭 선배께 감사드린다"며 최희섭에게 공을 돌렸다.
최희섭의 전력질주가 없었다면, 이범호의 홈런도 볼 수 없었다. 그 이전에 송구를 어렵게 만든 1루주자 나지완의 절묘한 슬라이딩도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발이 느린 나지완이 2루로 고개를 숙인 채 뛰어들어갔을 수 있다. 최희섭 역시 병살타를 직감하고 힘없이 1루로 뛰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거포는 있는 힘껏 뛰었다.
이처럼 타이거즈는 다시 한 번 이를 악물었다. 흔히 추락하는 팀의 문제는 선수들이 위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데 있다. 하지만 KIA는 구성원 모두 '비상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다. 최희섭의 전력질주는 그 증거 중 하나일 뿐이다. 연패에서 팀을 구한 전력질주, KIA가 반등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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