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에 서울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한국대표팀 출정식. 필자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 한 일본 미디어들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한국대표팀에 "2차 라운드에 올라가면 일본과 대결할 가능성이 있는데, 메이저리거들이 빠진 일본대표팀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대신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또 이승엽은 "일본이라고 해서 꼭 이겨야한다는 생각은 없다. 4강에 가기 전까지 6개 팀을 만나는데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똑 같은 적이다"고 말했다.
일본쪽에서는 한국쪽에서 '일본과 붙으면 무조건 이겨야한다'는 대답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류 감독과 이승엽은 차분했다. 두 사람의 말 속에는 일본을 바라보는 한국의 달라진 시각이 담겨 있다. 무조건 일본을 이겨야한다는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라. 냉정한 평가와 구체적인 이유를 위해 이겨야한다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보인다.
한-일전 때면 따라다니는 신경전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요즘에는 일부러 이런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아도 경기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생긴 라이벌 관계가 구축되고 있다.
그리고 한-일 선수간의 사이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지난해 이대호에게 일본선수에 대해 물어봤는데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국제대회에서 자주 상대를 하다보니 서로 알게 됐어요. 아베상(요미우리)은 원래 한국 선수들이 좋아하지 않나요. 요미우리 조노랑 이야기를 해봤고, 소프트뱅크의 혼다도 친해요". 이대호가 말한 이들은 모두 이번 일본대표팀 멤버다.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당연히 서로 싸우는 적이지만, 일본에서 뛴 선수를 시작으로 다른 선수들도 서로 아는 깊은 관계가 되고 있다.
좋은 라이벌로서 만나는 한-일의 진지한 승부. 거기에는 감정적인 싸움뿐이 아닌 미래 지향의 한-일전 모습이 엿보인다.
<일본어판 한국프로야구 가이드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