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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수(한화)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어느 때보다 큰 박수가 터졌다. 어느 때보다 큰 감동이 흘렀다. 11일 열린 '2011 골든글러브 시상식'의 화두, 꿈과 희망 그리고 감동이었다.
타격 3관왕의 과거
최형우는 "우여곡절이 많은 선수"라며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우여곡절, 이제는 모든 팬들이 알고 있다. 그래서 더 큰 축하를 받을만 하다.
2002년 삼성에 입단, 2005년에 방출됐다. 갈 곳은 경찰청 뿐이었다. 2군에서 눈물 젖은 빵을 곱씹었다.
땀은 배신을 하지 않았다. 2007시즌 2군리그에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그리고 전역후 삼성에 재입단의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2008년 신인왕, 올해 타격 3관왕을 차지했다. 말그대로 밑바닥에서 쓴 성공신화다.
작은거인이 준 꿈과 희망
이용규의 신상명세에 나와있는 1m75다. 하지만 누가봐도 그보다 작다.
작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 사실 이용규도 그런 꿈만 꾸던 그저 그런 선수였다. 2004년 LG 2차2라운드 15순위 지명 신인이 이용규였다. 그 해 52경기 출전, 타율 1할2푼9리에 그쳤다. 1,2군을 왔다갔다하는 교체 멤버였다.
시즌 뒤 홍현우에 묻어서(?) KIA로 트레이드됐다. 2군 시절의 활약을 눈여겨봤던 당시 유남호 감독은 그를 중용했다. KIA로서는 행운, LG에게는 불운이었다. 따지고 보면 외야자원이 풍부했던 LG에서는 뛸 자리가 없었다.
'작은 거인'은 그렇게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꽉 잡았다. '작은 선수들에게 던져준 꿈과 희망', 이용규의 골든글러브는 그래서 더 값지다.
연습생의 오뚝이 인생
이대수는 섬마을 출신이다. 전북 군산의 작은 섬 신시도에서 태어났다.
섬마을 소년은 수상소감에서 "2001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장에 왔었을 때 언젠가 주인공이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10년만에 꿈을 이뤘다"고 했다. 그리고는 "오늘 부모님이 오셨는데 정말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라고 울먹였다. 시상식장은 숙연해졌다.
그 눈물, 힘들었던 지난날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제2 야구인생의 시작이었다.
군산상고를 졸업하던 99년, 프로지명을 받지 못했다. 연습생으로 쌍방울에 들어갔다. 하지만 쌍방울이 해체되면서 그 자리마저 잃었다. 다행히 SK 연습생으로 다시 글러브를 낄수 있었다.
2001년 드디어 신고선수로 등록됐다. 2002년 3경기, 2003년 10경기에 나섰다. 그리고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서 뛰었다. 2006년에는 드디어 주전 유격수를 맡았다.
2007년, 두산으로 트레이드되는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알토란같은 활약으로 팀을 2년 연속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그러다 2009년 손시헌이 제대하면서 다시 설자리를 잃었다.
결국 그 해 한화로 다시 이적했다. 하지만 포기는 없었다. '오뚝이' 이대수는 언제나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이제 정상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신보순 기자 bsshi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