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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 선동열' 박희수 포스트시즌 점령기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1-10-20 14:31


SK와 롯데의 플레이오프 3차전. 8회초 1사 1루 SK 박희수가 롯데 홍성흔을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하고 있다. 도루를 시도하던 1루주자 전준우까지 함께 아웃되며 더블플레이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인천=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이렇게까지 엄청난 활약을 펼칠 지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의 수많은 변수를 온 몸으로 헤치고 만점활약을 펼치고 있다.

SK 불펜의 에이스로 우뚝 선 박희수.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1, 3차전 승부처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그리고 현역 최고의 타자 이대호를 제대로 돌려세웠다. 홍성흔도 박희수의 무서운 기세의 희생양이 됐다. 지난시즌까지 단 하나의 승리나 홀드, 그리고 세이브가 없었던 철저한 무명.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SK의 상승세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희수, 도대체 어떤 변신이 그를 '신데렐라'로 만들었을까.

군대에서 습득한 투심성 체인지업

박희수는 지난 6월17일 LG와의 3연전부터 필승계투조에 합류했다. 당시 SK 김성근 전 감독은 "이제 박희수는 필승계투조다. 검증이 끝난 선수"라고 했다. 이때부터 신들린 듯한 맹활약을 했다.

올 시즌 페넌트레이스 39경기에서 4승2패, 1세이브8홀드로 SK 마운드의 주축으로 우뚝섰다. 평균 자책점은 1.88에 불과하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1할7푼5리(리그 2위)밖에 되지 않은 피안타율이다. 그만큼 볼이 좋다는 의미다.

사실 처음부터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대전고를 나온 그는 2002년 SK에 6라운드 43순위에 지명됐다. 하지만 동국대에 진학했고, 2006년 SK에 뒤늦게 입단했다. 그러나 140㎞ 초반의 직구, 불안정한 제구력, 단순한 구질로 프로에서 살아남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변변한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2008년 상무에 입대했다.

입대 전 박희수는 SK 김성근 전 감독에게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다. 김 전 감독은 박희수에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익혀 와라"고 주문했다. 박희수는 "상무에서 체인지업을 익히려고 노력했다. 하루에 수십개의 볼을 던지며 결국 구종을 익혔다"고 했다.

그 구질은 특이하다. 투심과 체인지업의 중간형태다. SK 전력분석팀에서는 투심성 체인지업이라 부른다. 130㎞대의 스피드에 밖으로 휘면서 떨어지는 각이 적은 투심처럼 던질 수도 있고, 120㎞대의 떨어지는 각이 큰 서클 체인지업처럼 던질 수도 있다. 여러 개의 구질로 던져 타자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1, 3차전 이대호와 홍성흔을 범타처리했던 투심성 체인지업을 습득한 과정은 이렇게 이뤄졌다.


또 다시 추가한 두 가지 무기

투심성 체인지업을 익혔지만, 여전히 제구력은 불안했다. 투심성 체인지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140㎞ 초반에 불과했던 직구 스피드를 끌어올릴 필요도 있었다.

지난해 군에서 제대했지만, 여전히 박희수는 미완성이었다. 그저그런 좌완 투수였다.

하지만 그는 좋은 투구폼을 구사할 수 있는 신체적 유연함과 강인함이 있었다. 잠재력을 눈여겨 본 SK 김성근 감독과 김상진 투수코치는 그의 투구폼을 일단 개조했다. 그는 시즌 전 극단적인 오버핸드스로였다. 김광현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꽂는 릴리스포인트를 가지고 있었다. 팔을 조금 내렸다. 스리쿼터로 약간의 변형을 줬다. 그러자 제구력이 잡히기 시작했다. 스피드도 조금 더 나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오버핸드를 줄이면서, 투구 메커니즘의 효율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무기가 추가됐다. 고관절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고관절은 엉덩이와 허벅지를 잇는 관절이다. 고관절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볼을 던질 때 힘전달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같은 변화가 이뤄지자 박희수는 무서운 선수로 변신됐다. 김 전 감독은 당시 "예전에 볼은 밋밋했다. 그런데 올 시즌 박희수의 볼은 날카롭게 들어온다"고 했다.

2군 선동열, 1군을 점령하다.

이제 딱 하나 더 필요한 것은 경험이었다. SK 불펜은 풍부했다. 올 시즌 그는 2군에서 시작했다.

무적이었다. 20이닝을 던져 0.8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마무리로 나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인드 컨트롤을 습득했다. 2군에서 그의 별명은 '2군 선동열'이었다. SK는 올 시즌 초반 선발진이 붕괴되면서 중간계투진의 부담이 가중됐다.

김 전 감독은 박희수를 1군에 끌어올렸다. 히든카드를 빼들었다. 신들린 듯한 맹활약을 펼쳤다. 사실상 예고된 활약이었다.

SK 이만수 감독대행의 신뢰도 굳건했다. 그는 "지금 불펜에서 박희수의 볼이 가장 좋다"고 했다.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불안한 요소는 경험이었다. 박희수는 포스트시즌 경험이 전무했다.

그러나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에겐 실력이 있었다. 145㎞안팎의 직구는 자유자재로 타자 몸쪽, 바깥쪽을 파고들었다. 슬라이더의 각은 예리했고, 때론 투심으로 때론 서클체인지업으로 변신하는 투심성 체인지업은 타자를 혼란에 빠뜨렸다. 위기도 있었다. 1차전, 보크에 이어 김주찬에게 몸에 맞는 볼을 허용했다. 누가봐도 경험이 없는 박희수는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전준우와 이대호를 연속으로 범타 처리했다. 박희수는 포스트시즌의 수많은 변수를 실력으로 뚫었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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