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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전, 왜 유독 강타자에겐 무덤이 될까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1-10-20 14:23


롯데 이대호가 19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 8회에 삼진을 당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인천=김재현 기자 basser@sportschosun.com

왜 한국프로야구의 단기전은 '거포들의 무덤'이 되는 것일까.

한국 최고 강타자인 롯데 이대호가 SK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대호는 19일 현재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 12타수 2안타로 타율 1할6푼7리, 1타점, 무홈런을 기록중이다.

정규시즌 동안 27홈런, 113타점을 기록했던 이대호다. 그가 조금만 더 좋은 타격을 보였다면 롯데가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황에 놓여있을 것이다.

핵심타자의 침체, 늘 있던 일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같은 현상이 이례적인 게 아니다. 오릭스 이승엽은 삼성 시절인 2002년 LG와의 한국시리즈에서 6차전에 결정적인 동점 3점홈런을 쏘아올려 팀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선물했다. 하지만 그 앞선 타석까지 이승엽은 시리즈에서 2안타에 불과할 정도로 침묵했었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김응용 전 감독은 "그룹 고위층으로부터 이승엽이 저렇게 부진한데 왜 계속 기용하는가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선 이같은 현상이 훨씬 덜하다. 당장 최근까지 진행된 챔피언십시리즈만 봐도 그렇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세인트루이스의 강타자 앨버트 푸홀스는 챔피언십시리즈 6경기에서 타율 4할7푼8리, 2홈런 9타점으로 좋은 활약을 보였다.

역시 월드시리즈에 오른 텍사스의 넬슨 크루즈는 정규시즌에서 29홈런을 친 선수다. 이번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타율 3할6푼4리, 6홈런 13타점으로 활약했다.

물론 메이저리그라고 해서 단기전에서 강타자들이 늘 제몫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 프로야구에 비하면 분명히 그 확률이 껑충 뛰는 건 분명하다.


강타자의 부진, 이유는 무엇일까

단기전에선 팀마다 동원 가능한 최고의 투수를 마운드에 올리려 노력한다. 매일 컨디션까지 체크해서 가장 좋은 투수들이 마운드에 오르는 것이다. 정규시즌과 달리 2,3점 뒤진 상황에서도 필승조 투수들이 등판한다. 말 그대로 단기전이고, 다음 기회를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투수들과 만나다보니 강타자들도 정규시즌에 비해 어려운 승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이유만으론 메이저리그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국내 팀들은 단기전에서 강타자를 철저하게 피해간다. 정면승부를 거의 하지 않는 것이다. 이대호만 해도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고의4구 2개를 얻었다. SK쪽에선 "이대호는 걸러도 된다. 어차피 큰 것을 허용하느니 1루로 걸어가도록 하는 게 낫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다보니 투수들이 이대호에겐 바깥쪽과 몸쪽의 스트라이크존 외곽을 활용한 철저한 코너워크를 한다. 주로 볼만 던진다는 얘기다. 단기전에선 컨트롤 좋은 투수들이 많이 나오니까 이같은 '설계'가 가능하다. 거기에 이대호가 말려들면 좋은 일이고, 아니면 볼넷을 주면 된다. 이대호는 주자로서는 매력이 없다. 이대호가 1루에 있으면 무조건 안타 2개가 잇달아 나와야 홈인이 가능하다. 이렇게 계속 유인구만 던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이대호가 먼저 조급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게다가 한국프로야구는 언제 어느 순간에서든 홈런을 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진짜 거포가 드물다. 기본적으로 파워가 좋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라인업의 대부분이 홈런 생산 능력이 있다. 반면 한국프로야구는 라인업에서 특정 타깃을 정할 수 있다. 만약 앞뒤로 계속해서 거포들이 나온다면 상대 투수들이 마냥 유인구만 던져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다보니 프로 원년부터 단기전에서 기존 강타자들의 활약 보다는 '신데렐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흔히 말하는 '포스트시즌에선 미친 선수가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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