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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잠실구장. LG-넥센전을 앞두고 덕아웃 뒤 복도는 시끌벅적했다. 두 팀에는 유독 상대방이 친정팀인 선수들이 많다. 넥센 박병호와 LG 정성훈도 그랬다. 정성훈은 이날따라 방망이 한 자루를 들고 넥센 덕아웃 뒤를 계속해서 서성였다. 이유가 궁금했다. 정성훈은 "(유)한준이가 배트를 하나 달라고 해서 주려고 그런다"며 웃었다. 이때 박병호가 정성훈의 뒤를 따라붙었다. 마침 복도에 있는 정성훈의 사물함이 활짝 열려있었다.
박병호: (흰색 배트 2개를 꺼내면서) 이거 원래 제 배트잖아요.
정성훈: (손때 묻은 배트를 내주며) 그래, 하나 가져가라.
정성훈과 박병호는 서로 다른 무게의 배트를 쓴다. 박병호가 쓰는 배트는 가장 무거운 수준에 속한다. 배트에 묻은 진드기 자국 역시 박병호가 쓸 때 묻은 것이었다.
정성훈: 새 것까지 탐내? 이번 겨울에 쓸거니까, 이거 하나만 가져가.
박병호: (음흉한 눈빛을 보내며) 에이, 겨울에 어디에 쓴다구요. 저도 겨울에 이 배트 쓸려고 하는데….
정성훈: (몰려든 취재진을 보며) 내가 졌다. 보는 눈이 있어서 주는거야.
알고 보니 정성훈의 넉살이었다. 그는 실제로 넥센 선후배들이 배트를 달라고 하면 아낌없이 내준다. 아직도 넥센 선수단과 격의 없이 지낸다고. 박병호에게 받은 흰색 배트 두자루 역시 자신과 맞지 않아 큰 미련이 없었다.
박병호는 배트를 받아든 뒤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박병호는 "이 배트 수입업체가 바뀌어서 이제 안 들어와서요. 성훈이형,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둘 모두 한차례 유니폼을 바꿔 입었지만, 상대방을 향한 동료애는 그대로였다.
잠실=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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