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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고, 그를 안아준 건 가족이었다.
1회 수비에 나설 때까지 '공을 놓치면 어쩌지, 잘못 송구하면 어쩌지'라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니 긴장감은 싹 사라졌다. '배운대로만 열심히 하자'고 이를 악물었다. 2회말 들어선 첫번째 타석, 좌익수 왼쪽으로 빠지는 큰 타구를 날렸다. 결과는 2루타. 몸은 한층 가벼워졌다. 5회에도 우중간을 가르는 안타를 날렸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신이 났다. 3타수 2안타 1볼넷. 1득점은 결승득점이었다. 5회 대량득점의 물꼬를 튼 만점 활약이었다. 본인의 우려와 달리 수비도 깔끔했다. 시즌 기록은 9경기서 13타수 6안타로 타율 4할6푼2리, 지표가 적지만 훌륭한 성적이다.
데뷔 후 처음으로 수훈선수 인터뷰도 했다. 비록 방송이 아닌 구단에서 진행하는 인터뷰였지만, 수많은 팬들 앞에 서니 오히려 더 긴장됐다. 장내 아나운서의 말에 더듬더듬 답을 이어갔다. 너무 긴장돼 할 말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고.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관중의 환호에 답했다.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오늘보다 더 잘하도록 하루하루 노력하겠습니다."
백창수의 어머니는 이날 잠실구장을 찾았다. 비록 언제 경기에 나설지 모르는 백업 선수지만, 아들의 경기를 보러 오는 것은 어머니에겐 일상이었다. 백창수는 경기고 3학년 때 프로의 부름을 받지 못해 유급까지 했다. 이듬해에도 자신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그날 밤, 아버지는 '야구 그만 시키고 군대나 보내라'며 어머니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 아들은 죽어도 야구를 시켜야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백창수는 지난 6월 기자에게 "그 말을 듣고 방 안에서 혼자 눈물을 흘렸다. 나도 울고, 어머니도 울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비록 신고선수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지만, 어머니는 꾸준히 '야구 선수'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1군 선수는 아니었지만, 중고등학교 때처럼 야구장을 찾았다. 물론 아들을 만나지 않고 그냥 가는 날이 많았다. 아직 '1군 선수'가 아닌 아들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이런 어머니에게 아들은 "죄송해요"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니다. 창수 네가 우선이다"라고 했다.
백창수는 동료들과 식사를 하지 않고, 경기장 밖에서 기다린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엄했던 아버지 역시 "우리 아들 왔냐"며 반갑게 맞아줬다. 잠도 안 자고 아들을 기다린 아버지는 '축하 전화를 많이 받았다'며 싱글벙글 웃었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어머니는 고생한 아들을 위해 진수성찬을 차려줬다. 언제나 그렇듯 그에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었다.
인터뷰 도중 백창수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야구를 하면서 항상 꿈꿔온 게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제 하나의 꿈은 이룬 것 같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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