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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구를 원하지만, 직구는 치기 힘들다?'
오승환은 전형적인 투-피치 피처다.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 두개의 구종으로 타자를 압박한다. 그간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손가락 길이의 문제와 특유의 피칭폼으로 인해 포크볼이나 커브 같은 변화구를 잘 익히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관계 없다. 마무리투수 최고의 덕목인 강력한 직구 덕분에 오승환은 든든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달초였다. 독특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원정팀의 한 야수가 오승환을 찾아오더니 "형, 저도 방망이 좀 주세요"라고 말했다. 오승환의 단국대 후배였다. 오승환은 "야, 내가 타자냐. 배트가 어딨어"라고 말하면서도 "기다려 봐. 내가 준비했다가 나중에 줄게"라고 답했다.
이 선수는 곧이어 "아니, 배트 안 줘도 되니까요. 저에게 직구를 주세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직전 경기에서 대타로 나섰다가 오승환이 초구에 슬라이더를 던져 깜짝 놀랐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이 선수는 "초구부터 빠른 직구를 예상하고 어떻게든 치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갑자기 변화구가 휙 들어와 많이 당황스러웠다"고 설명했다.
오승환과 상대할 때 타자들의 기본 준비자세가 어떤 지를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오승환은 직구 투수다. 타자들도 뻔히 알기 때문에 초구부터 직구를 노린다는 것이다. 어차피 직구를 공략해야 안타를 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그 타이밍에 변화구가 들어오면, 오승환의 변화구가 그다지 각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공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그냥 직구를 던져달라"는 부탁이 나올만도 하다.
오승환의 직구가 갖는 이중적인 면이 바로 이런 것이다. 타자들은 직구를 노려야한다. 그런데 정작 직구를 정말 치기 어렵다.
많은 팬들이 궁금해하는 부분도 이것이다. '아니, 뻔히 직구 들어올 걸 알면서 대체 왜 건드리지도 못하는거야?'란 의문을 한번쯤 가져본 팬들이 많을 것이다.
포심패스트볼을 던진다 해도 그게 한 코스로만 향하는 게 아니다. 빠른 직구가 들어올 때는 다만 10㎝의 탄착점 차이라도 엄청난 변화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오승환의 최대 장점은 직구를 타자 무릎 높이로 깔려들어가는 낮은 코스로 던질 수 있다는 점이다. 타자가 공략하기 정말 어렵다. 게다가 마무리투수 특성상 한 타자가 두 타석을 상대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한국프로야구에도 최근 10년간 시속 160㎞에 육박하는 직구를 던지는 투수들이 몇몇 등장했었다. 하지만 오승환처럼 낮게 깔리는 포심패스트볼을 던지는 능력이 없었다. 대부분 공이 붕 뜨는 스타일이었다. 결국 그런 경우엔 공은 빨라도 생존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오승환도 맞을 때가 있다. 공이 일관되게 가운데로 몰리거나 부상 등의 이유로 구속이 저하되면 그의 포심패스트볼도 위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올시즌의 오승환은 '돌직구'로 타자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시즌 방어율 0.72. 이닝당 출루허용율 0.72. 9이닝 기준 12.78개의 탈삼진 행진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