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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하는 방패', 삼성 불펜의 저력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불펜, 봉인 해제
경기전 삼성 류중일 감독에게 질문했다. "불펜 총동원령입니까?"
이날 삼성 선발은 정인욱이었다. 그런데 며칠전 감기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때문에 삼성은 여차하면 경기 초반에라도 정인욱을 내리고 불펜 A조로 승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첫머리는 무조건 안지만이 맡기로 했다.
지나간 한주 동안 삼성 불펜 A조는 많이 던지지 않았다. 권오준 1⅓이닝, 권 혁 1⅓이닝, 안지만 1⅓이닝, 오승환 1이닝, 정현욱 3이닝 등이었다. 월요일 휴식일을 앞두고 일요일 경기에 물량작전을 펼칠만한 충분한 여건이 됐다. 평상시엔 이들을 적절히 두세명씩 셔플해서 기용하지만, 이날 만큼은 모두 투입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이날 정인욱은 그럭저럭 선발로서의 몫을 했다. 5이닝 2실점. 투구수가 76개에 불과했지만, 삼성은 1-2로 뒤진 6회에 안지만을 올렸다. 결국 삼성은 안지만이 2⅓이닝 1실점, 정현욱이 ⅔이닝 무실점, 오승환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잘 버텼다. 마운드가 버텨주는 동안, 삼성은 8회 공격서 2-2 동점을 만들었고 2-3으로 다시 뒤진 9회초 공격서 2점을 내면서 역전승했다. KIA쪽 실책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만큼 삼성 불펜이 주는 압박감이 컸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삼성 불펜발 스트레스
삼성 불펜이 이날 4이닝을 1실점으로 막았지만, 평소와 비교하면 내용상으로 많이 불안했다. 마무리 오승환도 세이브를 따내긴 했지만 9회에 1사 1,3루 위기를 겪기도 했다. 불펜 총동원령의 의미와 이날 승부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강심장인 A조 투수들도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이날 삼성의 '방패 공격'이 KIA쪽에도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삼성이 이날 불펜을 총동원할 것을 KIA도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상대 불펜이 줄줄이 나오기 전에 점수를 뽑아놓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경기 전반에 걸쳐 KIA가 리드를 잡고 있었음에도 오히려 쫓기는 듯한 느낌을 준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KIA의 전술적 측면에서도 이같은 스트레스가 드러났다. KIA는 3-2로 앞선 9회초 수비때 1사 2,3루 위기를 맞았다. 이때 삼성 현재윤 타석에서 KIA 내야는 전진수비를 펼쳤다. 내야땅볼때 3루 주자를 홈에서 잡겠다는 의도였다. 한점도 안 주겠다는 것인데, '동점을 내주면 불펜 전력상 이기기 어렵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봐도 될 듯하다. 삼성은 불펜 A조 전력이 남아있었고, KIA는 8회에 등판한 손영민이 사실상 마지막 카드였기 때문이다.
KIA는 3-4로 뒤진 9회말 공격서 선두타자가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이 장면에서 후속타자 이용규는 희생번트 대신 강공으로 나왔다. 물론 이용규가 좋은 타자라는 게 이유겠지만, 한편으론 '동점까지만 만들어선 승산이 없다'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보여진다.
이처럼 삼성의 불펜 A조는 상대를 심리적으로 괴롭히는 '공격 무기'의 특징까지 갖고 있다. 이날 삼성 타선에서 현재윤이 좋은 적시타를 쳤다. 근본적으로는 방패로 공격해 이긴 날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