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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의 그때는] 김응용 감독,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김재현 기자

기사입력 2011-06-14 09:33


역대 프로야구 감독 중 가장 사진 찍기 힘든 감독을 꼽으라면 김응용 감독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사진기자들이 김 감독의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들이대면 "거 뭐 하러 자꾸 찍어"라며 등을 돌리기 일쑤다. 그렇다고 사진취재를 포기할 수 는 없는 일. 김 감독이 눈치 채지 못하게 몰래 숨어서 찍고는 했다. 말 그대로 '몰래 카메라'였다. 그러나 김응용 감독이 누구인가. 1983년부터 2000년 까지 해태 타이거즈 감독을 맡으면서 팀을 9회나 우승시킬 만큼 작전에 대가였고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눈치 100단의 고단수인 것을 기자는 간과했다. 기자의 '몰래 카메라'작전에 김 감독도 나름의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두문불출'작전이었다. 덕아웃에 앉아 있다가도 카메라의 그림자라도 볼라 치면 곧바로 감독실로 줄행랑을 쳐 경기 시작 전 까지 두문불출했다. 그만큼 사진 찍히기를 싫어했던 그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 감독의 자연스런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다는 것은 그야말로 코끼리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빈틈은 있었다. 1996년 8월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태양이 내리쬐던 전주구장. 김응용 감독은 쌍방울과의 일전을 앞두고 덕아웃에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여름 오후의 뜨거운 태양은 훈련하는 선수나 그들을 지켜보는 김 감독을 쉬 지치게 만들었고 김 감독은 작은 의자에 그 큰 덩치를 밀어 넣고는 눕다시피 온 몸을 늘어 뜨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바로 김 감독이 카메라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은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카메라를 움켜 쥔 손에서 비 오듯 땀이 쏟아지는 것은 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행여 들킬세라 덕아웃에 연결된 복도 끝에 고양이처럼 몸을 숨긴 기자는 이렇게 무더위의 도움으로 김 감독의 초자연적인 모습을 한 컷 한 컷 조심스레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bass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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