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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새끼'에서 '날개 펼친 백조'로…
부산 출신인 차정민과 서동환은 2005년 입단 동기다. 입단 초 주목은 서동환이 더 크게 받았다. 부산 경남고에서 서울 신일고로 전학간 서동환은 2005년 2차 1번으로 5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두산에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 적응에 실패하면서 서서히 무대밖으로 밀려났다. 설상가상, 두 차례의 수술로 인해 선수생명에도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 2008년 4월24일 대구 삼성전 이후로는 1군 마운드에 설 기회를 얻지 못했다.
차정민도 서동환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부산상고 3학년 때 해태에 2차10번(전체 79순위)으로 지명을 받은 차정민은 동아대를 거쳐 2005년 프로무대를 밟았다. 그해 30경기에 나와 4승1패3홀드에 방어율 3.50으로 가능성을 보였지만, 더 이상 성장하지 못했다. 결국 차정민은 2007시즌을 마지막으로 경찰청에 입대한다. 2010시즌에 팀에 복귀한 차정민에게 1군에 설 기회는 여전히 없었다. 차정민은 지난해 1군 2경기에서 1⅔이닝밖에 던지지 못했다.
결정구의 완성, 이제는 지지 않는다.
시련을 통한 정신력의 강화 못지 않게 차정민과 서동환이 1군 무대에서 호투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결정구의 완성에 있다. 사실 그동안 두 선수가 암흑기를 겪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1군에서 통용될 만한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동환은 입단 초기 시속 150㎞를 넘는 강속구가 주무기였다. 그러나 제구력이 불안한 직구-슬라이더의 투 패턴 피칭으로는 1군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래서 찾아낸 구원의 해법이 바로 '포크볼'이었다. 서동환이 31일 인천 SK전에서 5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무려 5년만에 승리를 따낼 수 있던 비결은 바로 120㎞대 후반~130㎞대 초반에 이르는 포크볼이 주효했기 때문. 서동환은 이날 3개의 삼진 중 2개를 낮게 떨어지는 포크볼로 잡아냈다. 포크볼 덕분에 직구 스피드도 전성기에 비해 평균 5㎞ 정도 떨어졌지만, 활용가치가 있었다.
차정민은 변화가 심한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만들어냈다. 31일 잠실 두산전에서 3회 2사2루에 마운드에 오른 차정민은 3⅔이닝 3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는데, 최대의 무기가 바로 슬라이더였다. 53개의 투구수 중 슬라이더의 비중이 64%(32)나 됐다. 사이드암 차정민의 슬라이더는 오른손 타자의 몸쪽으로 살짝 치솟다가 아웃코스로 빠져 공략하기가 쉽지 않았다. 차정민은 "2군에서 슬라이더를 다듬는 데 주력했다. 경기를 통해 1군에서도 통한다는 확신을 얻게 됐다"며 자신이 갈고닦은 결정구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써내려갈 '신데렐라맨 스토리'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지 기대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