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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출신 고집쟁이 감독, 나이 60에 유럽을 제패하다

윤진만 기자

기사입력 2019-05-3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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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시오 사리 첼시 감독이 30일 아스널을 꺾고 유로파리그에서 우승한 뒤, 메달을 목에 건 채로 트로피 앞세 서 있다. EPA연합뉴스

다비드 루이스 등 첼시 선수들과 우승을 즐기고 있는 사리 감독. 사리 감독의 이런 모습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청년 마우리시오 사리(60)는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이탈리아 투스카니에 위치한 '몬테 데이 파스치 디 시에나'가 근무지였다. 오전에는 은행 업무를 보고 오후와 저녁을 이용해 이탈리아 8부팀 스티아를 지휘하는 게 일상이었다. 주변인들은 단순한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 입에서 떼지 않았던 담배처럼 말이다.

하지만 1999년, 사표를 던지고 축구감독이 되기로 작심했다. 산소비노, 산지오바네세 등 생소한 팀을 맡아 승격과 경질 코스를 번갈아 밟았다. 3~4부 리그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낸 사리 감독은 2부팀 엠폴리를 1부로 승격시킨 뒤 2015년 나폴리에 부임했다. 세리에A와 유럽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전방 압박과 점유율을 기반으로 한 '사리볼'이 진가를 발휘했고, 결국 안토니오 콩테의 후임을 찾던 첼시의 러브콜을 받았다. 이탈리아 아마추어 리그를 지휘하고, 미신에 집착하던 애연가가 직업을 바꾼 지 20년 만에 유럽 최고의 클럽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맞이한 첫 시즌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골키퍼 케파 아리사발라가(24)의 항명 사태와 맨시티전 0대6 패배가 잇달아 찾아왔다. 조르지뉴(27)의 주전 활용에 대한 비판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사리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사리볼' 전술도 고집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케파 사태 이후 분위기를 반전해 12경기에서 단 2패를 하며 최종순위 3위로 시즌을 마쳤다. 다음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티켓을 거머쥐고는 유로파리그 결승에 올라 우승까지 차지했다. 첼시는 30일 바쿠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올리비에 지루(32), 페드로(31), 에당 아자르(28)의 연속골로 아스널을 4대1로 대파했다.

전 첼시 미드필더 앤디 타운젠트(55)는 'BBC'를 통해 "곧 떠날 것처럼 보였던 사리 감독이 다시 팀을 똘똘 뭉치게 했고, 결국 폭풍을 이겨냈다"고 놀라워했다. 첼시 수비수 다비드 루이스(32)는 "사리 감독이 팀을 위해 굉장한 일을 해냈다"고 엄지를 들었다.

2013년 이후 첼시가 6년만에 수확한 이 유럽클럽대항전 타이틀은 사리 감독이 귀가 순해진다는 나이 이순(耳順)에 이룩한 첫 번째 메이저 트로피이기도 하다. 그는 "우승은 선수, 감독보단 클럽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승할 수 있어 매우 행복하다"고 특유의 굵고 낮은 음색으로 덤덤히 말했다.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낸 사리 감독이지만, 다음 시즌에도 스템포드 브릿지(첼시 홈구장)에 남을지 미지수다. 공석인 유벤투스 감독설이 불거진 상황이다. 사리 감독은 "개인적인 의견으론 첼시에 잔류할 만한 자격을 증명했다. 하지만 내 의견만으론 충분치 않을 수 있다. 시즌이 끝났으니 이제 구단과 마주 앉아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루이스는 "최고의 감독과 다음 시즌에도 함께하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아스널은 런던 라이벌 첼시와의 싸움에서 두 번이나 패했다. 4월에만 4패를 당하며 첼시에 역전을 허용했다. 결국 토트넘 홋스퍼에도 밀려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세비야 시절 유로파리그 3연속 우승을 거머쥔 '유로파 전문가' 우나이 에메리 감독(47)은 사리 감독과의 지략싸움에서 패하며 다음 시즌에도 유럽클럽대항전 2부격인 유로파리그에서 경쟁하게 됐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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