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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화 현대캐피탈 감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코트에서 세터 최태웅(35·현대캐피탈)이 넘어졌다. 다리에 쥐가 났기 때문이다. 하 감독은 서둘러 백업 세터 권영민에게 출전 준비를 신호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권영민이 투입됐다. 코트에서 나온 최태웅은 매트를 깔고 누웠다. 팀 후배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최태웅이 나온 현대캐피탈은 경기력이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편에 끌려가다 지는 경우가 잦다.
배구는 세터놀음이라고 한다. 세터가 누구에게 어떤 볼을 어떻게 올려주느냐에 따라 경기 내용과 결과가 달라진다. 세터는 코트의 감독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태웅은 눈이 뒷통수에 달렸다는 말까지 듣는다. 그는 자기 편 선수의 포지션 뿐 아니라 상대 선수들이 전위와 후위 어디에 누가 서 있는 지까지 매순간 꿰뚫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최태웅의 손놀림에 따라 상대 블로킹이 춤을 출때가 많다. 14일 라이벌 삼성화재전 1~2세트에서도 상대 주전 센터 고희진과 지태환은 전혀 블로킹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최태웅의 토스 흐름을 전혀 읽지 못했다. 신이 난 최태웅은 삼성화재 수비를 농락했다. 문성민과 수니아스의 오픈 공격을 생각하고 있을 때 센터 최민호를 이용한 속공을 썼다.
최태웅의 다리에 이상 신호는 3세트부터 온다. 신경을 많이 쓰고 피로가 누적되면서 생각처럼 다리가 움직여주지 않는다. 손은 멀쩡한데 다리가 따라가 주지 못한다. 나이가 많고 체력도 떨어질 때가 됐다. 다리에 쥐가 나면 아무리 손놀림이 좋아도 안 된다. 하종화 감독은 "태웅이의 체력이 가장 걱정스런 부분이다"고 말했다. 문제는 최태웅의 백업 권영민이 최태웅 만큼의 경기 운영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권영민의 볼배급 패턴이 상대팀에 너무 쉽게 읽혔다. 토스의 높낮이와 타이밍을 떠나 상대가 쉽게 알아차린다는 건 심각한 결점이다. 권영민을 빼고 다시 최태웅을 넣어보지만 이미 경기 흐름은 상대에 넘어간 뒤라 되돌릴 수가 없다.
최태웅은 2010년, 친정 삼성화재를 떠났다. 게다가 림프암이 발병해 암투병을 하면서 지난 시즌을 마쳤다. 2010년 말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최태웅은 왼팔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암진단을 받았다. 최태웅은 인생 최악의 시련을 극복하고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의 주전 센터가 됐다. 게다가 주장까지 맡았다. 그의 투혼이 아름답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