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는 '넘버원' 겨울스포츠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가시적 성과도 있다. 관중수도 늘고, 시청률도 높아지고 있다. 남녀부 분리운영을 전격 도입, 선진 프로 리그의 형태도 갖춰가고 있다. 하지만 달아오르던 열기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어이없는 오심 문제가 불거졌다. 엄밀히 말하면 오심,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던 '변질된 권위주의'에 대한 불만이 터졌다. 반발의 대상은 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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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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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19일 한국전력-KB손해보험전이었다. 3세트 20-20. 진병운 주심은 이재목(한국전력)의 캐치볼 파울을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전력은 상대 터치네트에 대해 비디오 판독 요청을 했고, 심판진은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논의 끝에 한국전력의 득점으로 정정됐다. 이는 명백한 오심이었다. 캐치볼이 터치네트에 우선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한국전력의 상대 터치네트에 대한 비디오 판독 요청은 기각됐어야 함이 옳다. 그러나 상황은 반대로 흘러갔다. KB손해보험의 항의에도 변한 건 없었다.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번복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영상을 통해 명확히 드러났음에도 심판진은 되돌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날 심판진은 4세트 22-23에서도 하현용(KB손해보험)의 터치네트를 선언했다. 이 역시 오심. 네트를 건드린 건 하현용이 아닌 전광인(한국전력)이었다. 참다 못한 권순찬 KB손해보험 감독이 재심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 술 더 떠 심판진은 KB손해보험에 퇴장 지시를 내렸다. 퇴장 명령을 받은 사람은 항의를 한 권 감독이 아닌 이동엽 코치였다.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 애써 부정하고 싶지 않은 스포츠계의 불문율이다. 그만큼 심판의 권위는 중요하다. 하지만 '땀의 가치'를 부정하면서까지 지켜져야 할 '성역'은 아니다. 공정성은 심판 권위에 우선한다. 공정성은 스포츠의 근간을 이루는 제1원칙이다. 심판의 권위는 바로 이 공정성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전제 아래 인정돼야 함이 마땅하다. 공정을 벗어난 권위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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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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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19일 '오심 사태'는 단순 오심 이상의 문제다. 바로 잡을 수 있는 수 차례 기회가 있었음에도 '변질된 권위'로 밀어붙여진 '아집의 집합체'였기 때문이다. 배구인은 물론, 이를 지켜본 수 많은 팬들도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불문율을 제쳐두고 비난의 활시위를 심판에게 당기는 이유다.
한 배구인은 "심판진이 보기에도 상황이 명백한데 항의가 괘씸하니 권 감독 대신 코치라도 퇴장을 시킨 것 아니냐. 이게 무슨 권위인가"라고 성토했다. 경기를 지켜본 다른 인사는 "경기 후 심판감독관이 대기심에게 '왜 주심에게 사인을 안 줬나'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기심이 주심에게 사인을 보낸다는 건 규정에 맞지도 않는 일이다. 문제에 대한 성찰보다 책임 넘기기에 급급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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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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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터진 불만의 봇물은 쉴 새 없이 넘친다. "왜 바로 잡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고집을 꺾지 않았나. 과연 그게 올바른 권위인가." 복수 배구인의 목소리다. 여기에 또 다른 배구인은 "심판 역량 강화보다 자리 보전을 위한 정치에 골몰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엔 그에 환멸을 느낀 심판들이 아마추어로 와서 아마추어 심판들의 퀄리티가 더 높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도 했다.
김윤희 한국배구연맹(KOVO) 사무총장, 주동욱 심판위원장, 신춘삼 경기위원장을 비롯한 여러 관계자 및 해당 주부심이 참석해 20일 사후 판독 및 사실 확인 회의가 진행됐다. 그 결과 해당심판진에 벌금과 배정정지가 주어질 것인데, 수위는 차후 결정된다.
징계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KOVO는 최근 V리그 진행중에도 공지 없이 전임 심판을 해외 리그에 파견,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경기운영위원을 선임한 바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번 사태도 잊혀질 것이고, 여전히 심판은 음지에서 변질된 권위를 놓지 않을 것이란 게 배구인 다수의 우려다.
주동욱 심판위원장은 "판독 과정에서 잘못이 있었고, 최종권한을 가진 주심도 책임이 있다. 운영에 미숙한 점이 있었다"며 "심판은 경기의 주인공이 아닌 조력자가 돼야 한다. 때로는 규정대로 운영하는 모습에서 지나치게 권위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는데, 심판도 노력해야 할 측면이 많은 만큼 많은 분들께서 조금 더 긍정적으로 봐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예쁘게 봐달라'는 심판위원장. 그 말도 맞다. 심판들도 분명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V리그, 이 프로배구라는 건 그들만 걷는 길이 아니다. 과연 오늘날까지 심판들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잘 하겠다'는 심판들의 말에도 당겨진 활시위는 느슨해질 줄 모른다. 걸어온 발자국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방향 설정을 제대로 해야 할 시점이다. 잘못 왔으면 인정하고 되돌아갈 용기도 필요하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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