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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 울려고 했는데…"
5개월간 이어진 대장정을 우승으로 마무리한 박 감독과 선수들은 코트 위에서 얼싸 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박 감독의 휴대전화도 덩달아 불이났다. 우승 축하 메시지가 순식간에 가득찼다.
박 감독은 우승 직후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우승 기자회견에서 "1등 감독을 만들어준 선수들에게 정말 고맙다"며 눈물을 훔쳤다.
"미도파 시절이었어요. 백구의대제전 1회 때 결승에서 현대랑 붙었죠. 그때 우리가 1, 2세트를 내주고 벼랑 끝에 있다가 역전 우승을 했어요. 우승한 순간 그 독하던 이창호 감독께서 '이제는 쉬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갑자기 그 생각이 났어요. 지도자의 마음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났나봐요. 이창호 감독님께 그 말씀을 드렸더니 '허허' 웃으시더라고요."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은 박 감독은 스승의 발걸음을 넘어 한국 프로스포츠의 새 역사를 쓴 인물로 남았다. 2014~2015시즌 흥국생명의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여성 사령탑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 감독은 후련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여성 지도자라서 부담이 됐어요. 여성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의 제 모습을 두고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여자 감독은 안 된다'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꾸지 않았을까요. 이번 우승을 통해 짐 하나를 내려놓은 기분이에요." 따라오는 가는 한숨은 안도의 의미였으리라. 그의 말처럼 한국 프로스포츠계에 여성 지도자가 설 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조혜정(여자프로배구 GS칼텍스) 이옥자(여자프로농구 KDB생명) 감독 등이 앞서 지휘봉을 잡았을 뿐이다. 잘해야 본전, 못하면 플러스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박 감독도 흥국생명 감독직을 맡기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제가 지도자 경험이 없거든요. 그런 제게 지휘봉을 맡기는 구단 역시 부담이었을 거예요. 고민이 많았죠.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실패할지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엄마로서의 위치도 선택을 힘들게 했다. 아이들이 마음에 걸린 것도 사실이다. 박 감독은 슬하에 아들, 딸 한 명씩을 두고 있다. 그는 "사실 흥국생명 감독을 하기 전에 지도자 제의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우리 아이들이 고등학생이라서 진학 때문에 고사했죠"라며 "흥국생명에서 감독직을 제안했을 때는 우리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한 뒤였어요. 기회가 왔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그래서 후회는 남기지 말자는 마음으로 수락했죠"라고 말했다.
고심 끝에 지휘봉을 잡은 '초보 사령탑' 박 감독은 세 시즌 만에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배구 지도자 무대에 '여성 시대'를 열었다. 최고의 순간, 박 감독은 더 나은 내일을 떠올렸다. 그는 "올 시즌 목표는 당연히 통합우승이죠. 챔피언결정전 치르기 전까지 체력도 쌓고 정신 무장도 잘 해야겠죠"라며 "언젠가는 감독을 그만 두겠지만, 차근차근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우리 선수들도 지난 3년 동안 많이 성장했고요, 매년 발전하고 있어요. 저 역시 아직 목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굳은 각오를 다졌다.
'핑크 여왕' 박 감독은 하루 휴식 후 본격적인 봄 배구 여정에 돌입할 계획이다. "하루는 쉴 생각이에요. 우승한 뒤에 선수들이랑 저녁을 먹었고요, 이제는 가족을 만나러 집에 가야죠. 밀린 집안일도 하고 시장도 좀 보고…." 시원시원하게 말을 이어가던 박 감독이 잠시 말을 끊었다. "음…집에 가면 애들이 또 둘이 있잖아요. 이제 우리집 애들도 봐야죠." 워킹맘 박 감독의 2017년 봄이 아주 특별하게, 그리고 분주하게 흘러가고 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