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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여제' 김연경, 日전 승리는 2% 목마름 채운 첫 발일 뿐…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6-08-07 17:57


김연경 선수가 6일 오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나징유 배구 경기장에서 진행된 2016 리우올림픽 여자배구 조별예선 1차전 대한민국-일본의 경기에서 4쿼터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4년 전이었다. '배구 여제'는 코트 위에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김연경(28·페네르바체)은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배구 3~4위 결정전에서 일본의 벽을 넘지 못해 동메달을 놓쳤다. 강한 승부욕의 소유자인 김연경은 당시 '숙적' 일본에 패한 것도 분했지만 올림픽 메달을 눈앞에서 놓친 것이 더 안타까웠다. 당시 아쉬움이 김연경의 가슴 한 켠에 '한(恨)'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4년간 김연경은 배구인생에서 이뤄야 할 것을 모두 이뤘다. 이미 국내와 일본을 평정한 뒤 유럽 무대도 빠르게 접수했다. 소속 팀 페네르바체를 이끌고 터키리그와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맛보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배구를 가장 잘 하는 여자 선수로 우뚝 섰다. 연봉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받는 선수가 됐다. 무려 15억원 수준이다. 그만큼 김연경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특히 2년 전에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을 두 차례나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은 2%의 목마름이 있었다. '올림픽 메달'이었다. 김연경은 리우로 떠나기 전 "리우올림픽에서 메달 색은 중요치 않다. 그러나 금색이면 좋겠다. 올림픽 메달만 따내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다"며 웃었다.

김연경이 마지막 꿈을 향한 산뜻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이정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은 6일(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마라카나지뉴에서 벌어진 '영원한 라이벌' 일본(세계랭킹 5위)과의 2016년 리우올림픽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세트스코어 3대1(19-25, 25-15, 25-17, 25-21)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김연경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일단 개인적인 욕심은 내려놓았다. 4년 전 설욕에 대한 마음이 컸다. 예상대로 일본의 집중견제는 피할 수 없었다. 일본 선수들은 김연경을 서브 타깃으로 삼았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의 기둥 김연경은 흔들림이 없었다. 전천후 공격수의 위용을 뽐냈다. 안정된 서브 리시브(39.13%)와 높은 공격 성공률(56.25%)로 30득점을 폭발시키며 한국의 역전승을 이끌었다.


김연경 선수가 6일 오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나징유 배구 경기장에서 진행된 2016 리우올림픽 여자배구 조별예선 1차전 대한민국-일본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공을 관중석으로 던지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한층 풍부해진 경험은 김연경의 주무기였다. "4년 전보다 경험이 많아지다 보니 웬만한 큰 대회에서 긴장하거나 어이없는 실수를 안 할 자신이 있다. 다양한 상황을 겪어봤기 때문에 잘 풀어갈 수 있다"던 김연경의 말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김연경 특유의 역발상도 그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김연경은 "상대의 견제가 심하겠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됐다. '배구계 메시'라는 별명에 대한 부담감은 크지 않다. 오히려 자극제가 된다.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전했다.

주장에 대한 책임감도 김연경의 경기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특히 이번 대회를 앞두고 김연경은 성격까지 바꿨다. 위기 상황에서 불같이 화내던 예전 모습을 버리고 후배들을 더욱 다독이는 모습을 보였다. 김연경이 차분한 모습으로 다가서자 선후배간 끈끈해진 정은 탄탄한 조직력으로 연결되며 코트를 지배했다.

일본전 해결사는 단연 김연경이었다. 그러나 김연경 혼자 이룬 쾌거는 아니다. 배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종목이 아니다. 모든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승리를 따낼 수 있다. 에이스 김연경 뒤에는 '황금세대'라 불리는 든든한 후배들이 버티고 있었다. 센터 양효진(현대건설) 김수지(흥국생명)와 김희진(IBK기업은행) 이재영(흥국생명) 등은 일본전 '언성 히어로(숨은 영웅)'였다. 양효진은 2009~2010시즌부터 2015~2016시즌까지 무려 7년 연속 V리그 블로킹 여왕의 위용을 뽐냈다. 양효진은 일본의 주장 기무라 사오리(방키방크 튀르크)와 함께 주포로 활약한 나가오카 미유의 공격을 수차례 원 블로킹으로 잡아내며 위기상황을 벗어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희진은 장기인 정확하고 강력한 서브로 일본의 리시브라인을 파괴했다. '막내' 이재영은 박정아(기업은행)가 흔들릴 때 투입돼 안정된 서브 리시브와 날카로운 공격을 성공시켰다. 김연경은 "믿을 만한 후배들이 있어 든든하다. 4년 전에는 언니들이 많아 노련한 플레이를 했지만 지금은 평균 연령이 어려졌지만 공격적이고 과감한 플레이를 한다"고 전했다.


일본전 승리에 도취될 시간이 없다. 한국 여자배구는 9일 더 강력한 상대를 만난다. 세계랭킹 4위 러시아다. 한국은 역대 올림픽에서 러시아를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7전 전패다. 상대전적에서도 7승44패로 크게 뒤져있다. '배구 여제'와 '언성 히어로'로 구성된 '한국여자배구판 어벤저스'의 진가가 다시 한번 발휘돼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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