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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이었다. '배구 여제'는 코트 위에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김연경(28·페네르바체)은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배구 3~4위 결정전에서 일본의 벽을 넘지 못해 동메달을 놓쳤다. 강한 승부욕의 소유자인 김연경은 당시 '숙적' 일본에 패한 것도 분했지만 올림픽 메달을 눈앞에서 놓친 것이 더 안타까웠다. 당시 아쉬움이 김연경의 가슴 한 켠에 '한(恨)'으로 자리잡고 있다.
김연경이 마지막 꿈을 향한 산뜻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이정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은 6일(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마라카나지뉴에서 벌어진 '영원한 라이벌' 일본(세계랭킹 5위)과의 2016년 리우올림픽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세트스코어 3대1(19-25, 25-15, 25-17, 25-21)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김연경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일단 개인적인 욕심은 내려놓았다. 4년 전 설욕에 대한 마음이 컸다. 예상대로 일본의 집중견제는 피할 수 없었다. 일본 선수들은 김연경을 서브 타깃으로 삼았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의 기둥 김연경은 흔들림이 없었다. 전천후 공격수의 위용을 뽐냈다. 안정된 서브 리시브(39.13%)와 높은 공격 성공률(56.25%)로 30득점을 폭발시키며 한국의 역전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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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에 대한 책임감도 김연경의 경기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특히 이번 대회를 앞두고 김연경은 성격까지 바꿨다. 위기 상황에서 불같이 화내던 예전 모습을 버리고 후배들을 더욱 다독이는 모습을 보였다. 김연경이 차분한 모습으로 다가서자 선후배간 끈끈해진 정은 탄탄한 조직력으로 연결되며 코트를 지배했다.
일본전 해결사는 단연 김연경이었다. 그러나 김연경 혼자 이룬 쾌거는 아니다. 배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종목이 아니다. 모든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승리를 따낼 수 있다. 에이스 김연경 뒤에는 '황금세대'라 불리는 든든한 후배들이 버티고 있었다. 센터 양효진(현대건설) 김수지(흥국생명)와 김희진(IBK기업은행) 이재영(흥국생명) 등은 일본전 '언성 히어로(숨은 영웅)'였다. 양효진은 2009~2010시즌부터 2015~2016시즌까지 무려 7년 연속 V리그 블로킹 여왕의 위용을 뽐냈다. 양효진은 일본의 주장 기무라 사오리(방키방크 튀르크)와 함께 주포로 활약한 나가오카 미유의 공격을 수차례 원 블로킹으로 잡아내며 위기상황을 벗어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희진은 장기인 정확하고 강력한 서브로 일본의 리시브라인을 파괴했다. '막내' 이재영은 박정아(기업은행)가 흔들릴 때 투입돼 안정된 서브 리시브와 날카로운 공격을 성공시켰다. 김연경은 "믿을 만한 후배들이 있어 든든하다. 4년 전에는 언니들이 많아 노련한 플레이를 했지만 지금은 평균 연령이 어려졌지만 공격적이고 과감한 플레이를 한다"고 전했다.
일본전 승리에 도취될 시간이 없다. 한국 여자배구는 9일 더 강력한 상대를 만난다. 세계랭킹 4위 러시아다. 한국은 역대 올림픽에서 러시아를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7전 전패다. 상대전적에서도 7승44패로 크게 뒤져있다. '배구 여제'와 '언성 히어로'로 구성된 '한국여자배구판 어벤저스'의 진가가 다시 한번 발휘돼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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