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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거부 레오, 보물만든 신치용 감독의 카리스마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2-11-07 03:12 | 최종수정 2012-11-07 10:57


개막을 앞둔 프로배구. 올시즌 가빈의 빈자리를 책임질 삼성화재 새로운 용병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즈가 신치용 감독과 포즈를 취했다. 용인=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레오야, 설악산 좋았지?"

6일 우승후보 LIG손해보험전을 승리로 장식한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이 기자회견장으로 쿠바 출신 외국인선수 레오가 들어오자 던진 질문이다. 레오는 곧바로 익살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레오의 반응에 기자회견장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신 감독과 레오는 이제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됐다. 그러나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둘의 사이는 썩 좋지 않았다.

사연은 이랬다. 레오는 삼성화재에 8번째 테스트를 받으러 온 선수였다. 신 감독은 7명의 외국인선수들의 기량에 불만족을 드러냈다. 레오도 사실 신 감독의 퇴짜 명단에 올랐다. 지난 2005~2009년까지 쿠바 주니어 대표로 활약했던 레오는 2009년 국가대표로 발탁돼 쿠바의 월드컵 북중미 예선 1위에 힘을 보탰다. 지난 시즌에는 푸에르토리코리그에서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우승을 이끌며 리그 MVP에도 올랐다. 높은 타점과 빠른 스윙이 강점으로 레프트, 라이트 포지션이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미덥지 않았다. 체중이 78kg밖에 나가지 않아 국내에서 통할 수 있을 지 미지수였다. 신 감독은 고희진 여오현 등 고참들을 불러 레오의 기량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선수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레오를 칭찬했다. "배구의 이해력이 좋은 선수인 것 같다. 바둑으로 비교하면 두수, 세수를 내다볼 줄 안다. 높은 질의 배구를 할 수 있는 선수다. 기술도 완벽하다. 체중은 불리기만 하면 된다."

레오가 삼성화재에서 훈련한 지 2주 정도 됐을 때였다. 신 감독이 베테랑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레오를 낙점하려 할 때 약간의 불화가 발생했다. 혹독하기로 유명한 삼성화재의 훈련 강도에 레오가 혀를 내둘렀다. 신 감독의 훈련 강도가 더 강해지자 레오가 반기를 들었다. 신 감독이 선수들에게 정신력 무장을 위해 운동장을 뛰라고 지시했는데 레오가 종아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뛰는 것을 거부했다. 신 감독과 레오는 곧바로 면담을 가졌다. 신 감독은 지도자 생활만 30여년이 넘는다. 좋은 선수를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다. 팀의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외국인선수를 보는 눈은 더 까다롭다. 또 자유분방한 외국인선수를 다루는 자신만의 비법도 가지고 있다. 신 감독은 훈련을 거부하는 레오에게 30분 동안 따끔하게 충고한 뒤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던졌다. "하기 싫으면 짐싸고 고향으로 돌아가." 그러자 레오는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아내와 두 아들을 책임지는 가장이었기에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레오가 미안함을 전하자 신 감독도 이내 화를 누그러뜨렸다. 신 감독은 "삼성화재가 외국인선수를 어떻게 다뤘는지는 잘 알 것이다. 외국인선수는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부분을 지워야 한다. 팀에 녹아들고 헌신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레오의 훈련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삼성화재와 계약 이후 설악산 전지훈련 때 대청봉도 5시간 만에 주파할 정도로 헌신하는 선수가 됐다. 그래도 레오는 힘든 가운데에서 신 감독에게 농담섞인 한 마디를 건넸다. "쿠바는 이렇게 강하게 훈련을 안한다."

이제 레오는 '삼성맨'이 다 됐다. "쿠바도 훈련이 강한데 삼성화재처럼 강하진 않다. 그래도 팀의 한 일원으로 승리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요즘 신 감독이 레오에게 주문하는 것은 하나다. '인상을 밝게 하라.' 레오의 부탁이 있었지만, 신 감독은 이마저도 단칼에 잘랐다. 레오는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코트 안에서 인상을 쓰는 모습이 있는데 이해해 달라'고 얘기했단다. 신 감독은 "'네가 인상을 쓰면 팀 분위기가 안좋아지니 밝은 인상을 유지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구미=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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